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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돌아다니기

소망의 상징 ◆ 명동성당 ◆

얼마전 태사랑 사진전 을 들른 후 간만에 온 명동 거리를 걷다가 이왕이면 명동성당까지 잠깐 들러보자 마음 먹었다.

론리플래닛 코리아 서울관광 4일째 코스 남대문시장->남산->홍대 에도 포함된 곳.

Next day explore traditional Namdaemun market followed by Myeong-dong's fashion boutiques and the Catholic Cathedral. Look round Namsangol Folk Village and climb up Namsan. Then hang out in funky Hongik where you can enjoy live music and club until dawn

나중에 외국인이 다니는 여행 코스로 한번 시간내서 가보자 마음 먹었던 터라 미룰까 하다가 이런것 까지 미룰필요가 있나 생각 들었다.

MYENG-DONG CATHOLIC-CATHEDRAL
명동성당
This cathedral is an elegant brick Renaissance-style building that was completed in 1898. It provided a sanctuary for student and trade-union protestors during the long period of military rule after the Korea War, and is an important national symbol of democracy and human rights. English-language worship occurs at 9am on Sunday.


어렸을때 그렇게 많이 명동에 나와서 놀았음에도 불구 하고 이 성당안으로 한번도 들어가보지 않았음에 내가 놀란다.

멀리서 바라보며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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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벽이 왜 저렇지?
보수 공사중 인듯했다.
쩝,, 하필이면.. 오는날이 장날인가.. 어쩌면 이것도 기념이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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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 종탑 원형의 모습을 볼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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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4개 국어의 안내팜플렛을 얻을 수 있다


그나저나 아무 준비없이 왔는데 어쩌지 걱정했는데 다행이 입구에서 안내 팜플렛을 얻을 수 있었다.
관광객도 많이 오는지 4개국 언어로 된 팜플렛들 이였다.

한번 쭉 살펴본다.

명동대성당

서울대교구 주교와 명동대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이자 한국천주교회의 상징이다.
이곳에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1784년 명례방 종교집회에서이다. 이 후 1892년 코스트 신부가 성당 설계에 착수 하였으며, 1898년 5월 29일, 한국 교회의 주보인 무염시태의 마리아를 주보로 하여 대성당을 축성, 봉헌하였다.
1900년부터는 기해,병인박해 때 순교한 분들의 일부 유해를 받아 현재까지 지하성당에 모시고 있다. 1942년에는 최초의 한국인 주임신부가 부임하였으며, 최초의 한국인 주교 노기남 주교의 수품식이 거행 되었다.
1945년에는 광복을 맞아 성당명을 종현대성당에서 명동대성당으로 바꾸었다.
명동대성당은 197,80년대 근현대사의 격동기에 한국사회의 인권신장 및 민주화의 성지로서의 역할을 했으며, 현재에는 기도하고 선교하는 공동체로 세상을 향하고 있다.

한국 초기의 벽돌조 성당이며 순수한 고딕양식 구조로 사적 제258호로 지정되어 있는 명동대성당은 그 건물 양식으로도 하나의 교회사적 의미를 가진다. 대성당의 평면은 라틴십자가형 삼랑식이고 본당의 높이는 23m, 종탑의 높이는 45m이며, 장식적 요소를 배제한 순수 고딕 양식을 본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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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마당 예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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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도 보수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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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성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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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 피스트홀

찬찬히 둘러 보았다.
역시 모든 벽이 보수 공사 였다.
여기가 계성여고 이구나. 옛날 미팅 하던 생각 살짝 나고 ^^;; 옆에 전시 홀은 시간이 늦어서인지 문이 닫혀 있었다.

몇몇사람들이 서둘러서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다.
미사중인가? 살짝 옆문으로 숨을 내쉬며 들어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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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문을 들어서자마자 성스러운 음악이 실내를 감싸며 어떤 의식을 치루고 있었다.
뭐라고 불리는지는 모르지만 영화에서도 많이 보았고 뭘 하나씩 나눠주는데...

미사에 방해 되지 않게 살금 살금 옆으로 이동 앉아서 찬찬히 둘러본다.

처음 와보는 성당 미사라 어리둥절 하다.
내가 방해가 되는 아닐까?
다행이 사람들은 별로 신경 안쓰는 듯 했다.

3열로 좌석이 배치대어 있었는데 기둥때문에 중앙이 안보였다.
그 때문에 티비가 장착되어 있었는데 가동은 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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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지도를 살펴본다.
아 이쪽 끝에 있는 동상이 성 분도(베네딕도)상 이구나.
양심이 있는지라 가까이 가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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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으로 가서 또 둘러본다.
늦게 도착 하셨는지 문으로 들어와 성수를 적시고 성호를 그으며 들어오시는 분 몇분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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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에는 여러 판화가 걸려져 있었으며 2층 파이프 오르간, 유리창 등등 살펴봤다.

아무래도 계속 서서 사진을 찍어대기엔 좀 미안한 감이 있어서 일단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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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공사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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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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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흉상


옆쪽 보수공사 전시관에서는 아나바다행사를 하고 있었다.
사제관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미사가 끝났는지 사람들이 나오며 성 김대건 흉상쪽으로 성호를 긋고 가신다.

음... 이젠 방해 안될테지? 다시 옆문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서 떠나지 않으며 묵념과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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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로왔던것은 모든 나무 판화앞에서  신도들이 기도를 드리는 것이였다.
하나하나에 그 무언가의 상징이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명동성당 홈페이지에 가서 보니 자세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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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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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까이 하기엔...


여러 사진을 찍다가도 아무래도 안되겠다.
내가 사진 전문가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실례가 되겠다 해서 다시 나온다.
따로 다른곳까지 둘러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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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날씨가 꽤 쌀쌀하다.
4월초가 원래 이런 날씨 였나?
괜시리 돌아다니기가 귀찮다. 빨리 따뜻한 날이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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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해 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그렇고 해서 밖으로 나왔는데 아.. 성모동굴이 이쪽에 있구나..
카톨릭 병원 주차장 쪽에 있었다.

몇몇분이 오셔서 옆에 있는 상자에 불붙인 초를 넣고 또다시 기도... (옆에 무인판매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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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르드 성모동굴


나는 종교가 없지만 모든 종교를 존중한다.
성당 미사에 처음 와본 경험으로 무척 성스러운 환경과  신앙심 두터운 신도들을 보며 또 다시 웬지 모를 천주교의 순결한 이미지를 재확인 한다.

하지만 이 명동성당의 의미는 무엇보다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상징이 되는 중요한 곳임을 되새긴다.

과거 많은 학생운동과 인권,노동운등 등의 정신적 안식처로 자기 목소리를 그나마 외압에 구애 받지 않고 낼 수 있었던 장소였다. 왜 이곳을 택했었을까?? 이곳이라면 누군가는 들어주겠지 하는 바램이였을까??

젊었을때 수없이 지나가면서 텐트까지 쳐가면서 데모를 하던 여러 모습들을 남의 일인양 관심도 안가지고 지나쳤던 때가 생각이 난다.

그분들 덕택에 그나마 이렇게 많은 모순점을 바로잡고 고치려는, 고칠 수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도 성당앞 도로에서는 어떤 한분이 외로이 노동가를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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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갈망하는 한 소녀의 기도 동상을 보며 마음속으로 많은 상상과 의미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