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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돌아다니기

한강노들섬 이모저모 - 2007하이서울페스티벌(04/29) -

시청앞 서울광장을 빠른 걸음으로 나선 이유는 이번행사 최대 하이라이트라고 불리는 '정조 반차 재현' 을 늦게 나마 보고 싶어서였다.

정조 반차 재현
- 정조반차도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기념하기 위해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가 묻힌 화성(현재의 수원)까지 약 8일간의 행차를 잠은 것으로 1779명의 인원과 779 필의 말이 정교하고 세세하게 표현돼 있어 웅장함을 넘어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이 정조반차도가 지금 막 그림에서 튀어나와 재현되는 모습을 만나보세요. 930여명의 참여인원과 120여필의 말로 재현될 정조 반차 재현은 수십만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한자리에 모이는 축제의 최대 볼거리가 될 것입니다.

이미 11시에 창덕궁 돈화문에서 시작된 이 행사를 보려면 마지막 장소인 노들섬으로 가면 볼수 있으리라 하는 기대 였다. 3시경에 끝난다니 그전에 그곳에 행사중인 '8도 대동 민속놀이'도 볼겸.

도착한 시간은 2시경 ...
그러나...

막 도착하고 나니 울리던 풍악이 멈추고 '8도 대동 민속놀이'는 막을 내리고 곧이어 급하게 수상식을 거행.
이상타 했는데 이미 정조 반차 재현 행렬이 일부 들어와 있고,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타이밍 놓쳤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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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등상사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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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요즘 바쁘다 바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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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 행렬 ㅠ.ㅠ


 개그맨 김종석의 사회로 뭔가 행사가 열리려 하고 있었는데

"휴 세레모니" 라고 하기에 뭐 대단한건가 했더니... 그냥 앉아서 잠깐 쉬는 것을 보여준다 OT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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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으로 가는 고된 행렬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 형상을 보여주는 것이였는데 왕이 손수 어머님께 인사를 올리며 차를 권하는 모습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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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많은 기자들과 사진 찍으러 온 사람들 무섭다.
잠깐 왕과 시장이 함께 있는 모습 기념 촬영할 시간을 주자  벌떼같이 안으로 몰려들어 난장판 된다.
그 와중에 애들도 넘어지고 한사람은 사다리로 애 머리를 쳐서 넘어 뜨렸는데 아랑곳 않고 힐끗 쳐다 보더니 사진찍으러 간다.
그넘의 사진이 뭔지... 애는 울어 제껴 대는데...

많은 고가의 사진기를 들고 온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 생각않는 일부 매너 없는 인간들 정말 싫다.

이번에도 느끼는 거지만 큼지막한 렌즈 달고 유세떠는 일부 사진찍는 분들 대체 얼마나 좋은 사진 건지는 건가 일일히 체크해 보고 싶다.
제발 관람하는 일반 시민들 피해 좀 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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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장병 아저씨들 고생 많았어요~


잠깐의 행사(?) 가 끝나고 이젠 뭐하지?? 허무 하다.

1시간후에 고적대 음악 연다고는 하는데. 그때까지 주변에 특별히 할게 없다.
농산물 직거래장터의사혐회 건강한 서울시민만들기 부쓰들이 꽤 많은데 별 관심이 없으니 뭐...

이럴줄 알았으면 서울광장에서 공연이나 볼껄...

그래도 허무한 생각에 "미라클수중다리 건너기" 를  해보기 위해 행사장을 떠났다.

강 위를 걷는 짜릿한 체험!
미라클 수중다리 건너기
-노들섬과 이촌지구 사이 30cm 깊이의 수중다리를 만들어 그 위를 맨발로 건너는 시민체험 프로그램입니다.

한강대교를 거닐며 보니 멀리서 구명 조끼를 입은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데.. 흐이그.. 줄 선 사람들 보게. 정말 많이 있다.
그냥 갈까 하다가 너무 아쉬워서 나도 줄을 섰다.

강변이라 그런지 무척 바람이 세고 차다.

1시간정도 기다렸다. 순서 정말 안온다 ㅠ.ㅠ
도중에 "충효의 배다리" 개방 했다고 오래 기다리기 지루한 분은 그곳으로 가라고 했지만 기다린 시간 아까워서 꾿꾿히 참았다.
건너가서 돌아올때 그쪽으로 오면 되지 뭐.

 일일히 이름과 전화번호를 쓰고(빠져서 사고 날까봐 그러나?) 구명조끼를 입고 입구를 보니. 헐...
예상은 했지만 신발 벗어야 겠다.

자원봉사자들이 신발을 담을 비날봉투를 일일히 나눠주고 있었고 다행이 물을 닦을 수건도 준비해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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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수중다리가 보인다. 갈까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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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사람들 보니 망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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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의 시간이 끝나고 출발~

자 이제 건너가 볼까?
윽!! 이건 정말 얼음장이잖아?

물 너무 차갑다.
도중 휴식처에 왜 사람들이 많은가 했더니 이유가 있었군.
기념 쵤영은 둘째 치고 발이 너무 시려서 쉬어 갈 수 밖에 없다.

그래도 한강을 이렇게 물위(?)로 건너 본다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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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얼한 발을 닦고 다시 노들섬 방향으로 간다.

이번엔 '충효의 배다리 건너기' 이다.

충효의 배다리 건너기
- 작은 배들을 한 줄로 띄우고 그 위에 널빤지를 건너질러 다리를 놓은 듯 이어 만든 곳을 건너는 행사입니다.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해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경기도 화성으로 행차하면서 도강한 것으로 기록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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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는 어떻게 만들어 졌나?
정조는 1789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 화성으로 옮긴후 매년 이를 참배 하기 위해 거동길에 나섰다. 화성 거동길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한강을 건너는 일이었다. 한강을 최소의 비용으로 안전하게 건너기 위해서는 배다리를 놓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원래 한강을 전널 때는 직접 배를 타고 건너는 것이 오랜 관행이었지만 때에 따라서는 배다리를 놓은 경우가 종종 있어왔다.

하지만 종래의 방법으로는 공사기간이 길고 수백 척의 배를 동원하는 등 폐단이 컸다. 즉 동원된 이배들은 한강을 오르내리면서 조세곡을 실어 나르거나 장사를 하는 배들 이었으므로 생업에도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 정조는 이 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심각하게 고민하여 짧은 시간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배다리를 건설하는 방법을 신하들과 더불어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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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연구로 도출된 새로운 배다리 설계의 특징은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 다리의 안정성과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이다. 특히 큰 배들을 강심(江心)에 배치하고 이를 축으로 작은 배들을 남북으로 배치함으로서 완만한 아치형을 이루게 한 것은 오늘날 사장교(斜張橋)의 원리와도 비슷하다. 또한 동원된 민간선박에 못을 박지 않고도 안전한 다리가 되도록 독특한 연결방법을 구상하였는데 이는 매우 탁월한 착상 이였다. 더욱이 바닷물이 드나드는 한강 일대의 지리조건을 정확하게  이해하여 조수의 간만에도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선창(船艙)을 조교(弔橋)형식으로 해결한 점도 기발 하였다.

이 밖에 경강선을 동원할 때 선주들에게 적절한 반대급부를 부여하여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경영자 적인 안목도 보였다,. 배다리 공사를 군대식으로 치밀하게 조직하고 관리하는 정조의 능력은 비범하였다. 한강 배다리 건설은 원래 20일을 예상했으나 불과 11일 만에 다리가 건설 되었다. 한강의 노들강변에 멋들어진 배다리가 단기간에 건설된 것은 이때가 처음으로, 이는 조선시대 다리역사의 획을 긋는 큰 사건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기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거사이기도 하였다.

(출처 : 한영우, <반차도>로 따라가는 정조의 화성행차, 효형출판, 2007)

노들섬 지역을 떠나면서 청계지역까지 가볼까 하다가 도저히 몸이 안따른다.
그러다 보니 내가 무슨 여행 작가도 아니고 왜 이러고 다니나 한심도 하다.
그냥 편히 한곳에서 하나만 재밌게 즐기면 될텐데...
괜한 욕심에 여러 좋은 행사를 알맹이는 못보고 겉핥기만 하였다.
다음엔 이런  전철을 밟지 말아야지...

많이 보는게 중요한게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왜 자꾸 놓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