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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돌아다니기

◆종루,보신각(普信閣)◆ 대한민국의 새 아침을 열어라

어렸을때 뻔질나게 종로 바닥 다녔음에도 제대로 보신각을 본적이 있는지 가물하다.

아! 딱 한번 일부러 보려 한적 있구나? 고3 시험 보고 나서 대학 떨어진것 확인 하고, 에이~ 놀러 다니다가 종로3가 나이트클럽에서 실컷 몸 흔들고 자정 무렵에야 새해의 종 울리는 것 구경하려고 인파를 헤치며 갔것만, 사람 많아서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다.

한가지 궁금한건 왜 그때 종 울리고 나서 모든 사람들이 새해 이미지와 맞지 않는 "아침이슬"을 불렀었을까??
그 당시 시대가 그랬나? 그래도 새해인데 ^^;;
모두가 부를수 있는 노래가 없지 않나 싶다. 하긴 야밤에 "까치설날" 부르는 것도 그렇긴 하다.

어쨌든 그날 '올해에는 열심히 공부 해야지' 마음먹고 집에 돌아왔건만, 집에 있는 양주 몰래 마시고 들킬까봐 보리차 넣어 놓은게 발각되어 새해 아침부터 되지게 혼나서 엉엉 울었다.ㅠ.ㅠ

흠흠, 오늘 모처럼 종로바닥 나왔으니 잠깐 구경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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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뭐 구경 하고 싶어도 할 게 없다.
개방도 안했고 겉에서 볼 수 밖에 없는데 뭐 어쩌라구...
망원경 가진 것도 아니고...
그래도 뭐 일부러 보려고 왔음에 만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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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으로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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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승만 대통령이 쓴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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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에서도 보고



서울사람치고 종로에 와보지 않은 사람이 없듯 종각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종이 왜 그 곳에 있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사실 각이라 하는 것은 단층 건물, 혹은 1층에 붙는 이름이다. 지금은 2층 루에 종이 달려 있으므로 '종루'라고 하는 것이 맞다.

조선시대 도성 4개 대문의 이름을 흥인지문, 창의문, 숭례문, 숙정문이라고 하고 중심이 되는 위치에 보신각을 지어 '인의예지신' 의 오행을 구현하고 있다.

보신각 종은 1398년인 태조 7년에 완성되어 현 인사동 앞에 있다가 6년 후 종로 네거리로 옮겨졌으나 임진왜란 떄 종각이 불에 타고 종은 땅에 묻혀 녹슬어 못쓰게 되자 숭례문 옆에 버려져 있던 원각사 종을 숭례문 보루에 걸고 사용하였다. 다시 원각사 종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은 광해군 때이고 보신각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고종 때부터이다.

근래에 와서 원래의 종에 금이 간 것이 발견돼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연구소 내에 안치되어 있다. 원래의 보신각 종은 보물 2호로, 세조 1년에 주조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종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보신각 종루는 1979년에 완성한 것으로, 연건평 144평에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되어 있다. 종루에 걸려 있는 현재의 보신각 종은 1985년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서 주조하였다. 보신각 앞은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이 만남의 장소로 애용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 앞을 지나다니다보면 애인과 친구를 지다리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의 제도를 따라 자시,축시,인시 등으로 불렀던 하루 12시간 중 밤에 해당하는 다섯 시간, 즉 술시에서 인시까지를 초경 이경 오경으로 나누어 각 경마다 북을 쳤다. 또 각 경은 다시 5점으로 나누어 각 점마다 징이나 꽹가리를 쳤다. 한 경은 오늘날 시간으로 따지면 2시간, 한 점은 24분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소리를 모든 주민이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사대문이 닫히고 주민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이경(밤 10시경)과,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오경(새벽 4시경)만큼은 종로 보신각에 있는 대종을 쳐서 널리 알렸다. 이격에는 대종을 28번 쳤는데 이를 인정이라 했고, 오경에는 33번 쳐 이를 파루라 했다.
인정에 28번을 친 것은 제석천(불교의 수호신)이 이끄는 하늘의 삼십삼천에게 하루의 국태민안을 기원한 것이었다.

매년 헌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시간이면 보신각의 종소리를 들으며 첫날을 연다. 매년 새해 첫날 어김없이 33번의 우렁찬 종소리가 울려퍼지는데 제야의 종을 33번 치는 것은 조선시대에 이른 새벽 사대문 개방과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타종, 즉 파루를 33번 친 데서 연유한 것이다. 33번의 타종은 우리 민족과 국가는 무력이 아닌, 홍익인간과 광명이세를 근간으로 인, 의, 예, 지로써 백성을 다스리고 교화할 것임을 33천, 즉 우주 전체에 맹세한다는 의미이며 이러한 통치이념이 종이 울릴 때마다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출처:  <1000원으로 시작하는 서울 역사 문화 여행 - 글 : 윤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