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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일간동남아여행일기/캄보디아

#54 시간여행의 첫걸음 (캄보디아 씨엔립 2일)

<84일간 동남아 여행일기 54일째>
씨엔립 2일 
2007/01/27 (토)  날씨 : 관광하기 괜찮았다. 

Time Canon - Triumph
Killing Time - Triumph

느즈막히 일어나 일기를 쓴다.
방을 옮기려 마음 먹었다.
그리 좋아 보이지도 않고, 테안이가 트윈룸에 올라갔다 오더니 그냥 그렇단다.
이곳 롱라이브는 한국사람들도 너무 많으니 웬지 불편하다.
핫샤워가 안되어서 세수만 하고 나와 좀 거닌다.
스마일리 G.H 1층 좀 넓은 방이 마음에 든다고 태안이는 떼쓴다.
2층이 더 괞찮은듯도 한데... 아무래도 좀 넓은방이 편하긴 하다.
다시 돌아와 체크아웃하며 어제의 뚝뚝기사를 만난다
있다가 전화한다고 하고 일단 짐 풀고 스마일리에서 식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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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떠나 볼까? 씻고 채비.
12시경에야 뚝뚝기사불러서 출발을 한다.

우리의 계획은 일출이나 일몰 그런것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우리 맘대로 가고 싶은곳 정해서 가고싶었다.
괜히 점심시간에 시내로 왔다가 다시가고 그러고 싶지 않았고 이왕이면 넉넉히 시간에 쫒기지 않게 가능한한 시대순으로 관람을 하고 싶었다.
뚝뚝기사에게 설명을 하고 오늘은 롤루오스 유적과 반띠아이 쓰레이 를 보기로 했다.

일단 매표소,
일주일권을 끊으니 좀 놀라는 눈치이다.
준비한 사진이 있었으나 일부러 그자리에서 기념이 되게 즉석 디카로 찍었다.
이 시간에도 여지없이 단체 관광객들이 줄서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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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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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히 일주일권으로


자 이제 첫 발걸음이다. 롤루오스로~

롤루오스 유적 : 씨엔리업 시내 남동쪽에 위치한 3개의 사원인 바꽁 Bakong, 롤레이 Lolei, 쁘리아 꼬 Preah Ko 를 일컬어 롤루오스 유적이라고 한다.
세 사원 모두 앙코르 시대 초기인 9세기 후반에 건설 되었으며 건축구조, 장식, 건축 자재들이 모두 비슷하다. 크메르 예술의 초기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100배 즐기기>

쁘리아 꼬 Preah Ko : 크메르 왕국 최초의 공식 수도인 롤루오스  지역에 남은 대표적인 유적 중 하나이다. '성스러운 소'라는 뜻의 쁘리아 꼬는 시바 신에게 헌정된 사원이자 인드라바르만 1세가 조상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건립한 사당이다.
< 이하 All About 앙코르 유적>

쁘리아 꼬 정말 한적하다.
점심시간 가까와서 그런건지, 아니면 사람들 일부러 찾지 않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째 우리 둘밖에 없다.
너무 좋다.

여행동안 꺼내보지 않았던 앙코르왓 책을 들쳐가며 해설에 밑줄 그어가며, 뭐 빠뜨리고 놓친 것 없나  체크해가며 꼼꼼히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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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꽁 Bakong : 자야바르만 2세는 여러번의 천도를 거쳐 현대의 롤루오스에 최초의 도시다운 수도인 하리하랄랴야를 건립했다. 자야바르만 2세의 뒤를 이은 자야바르만 3세는 평생을 바쳐 왕국의 기반을 다졌다. 왕국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3대왕 인드라바르만 1세는 이러한 번영을 신의 은덕으로 믿고 장엄한 사원을 지어 시바 신에게 바쳤다. 물론 인드라바르만 1세는 앞서 쁘리아 꼬를 건립했지만 쁘리아 꼬는 조상묘일 뿐 진정한 신전 용도의 사원은 바꽁이 최초인 셈이다. 또한 바꽁은 시바 신의 거처인 메루산을 형상화한 최초의 신전이기도 하다.

이어서 바꽁도 너무나 좋다.
아까보다 더 꼼꼼히 밑줄치며 감상한다.
이곳에 오면 고고학자가 된다는 말이 수긍이 간다.

사람들 참 한적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태안이도 얼굴보니 해피해 하는게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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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레이 Lolei : 다모작이 가능한 들판도 건기엔 소용이 없었다. 건기에 접어들면 온세상이 말라버려 농사는 물론 백성들의 식수조차 구하지 어려운 처지였다. 왕은 이를 안타까워 하여 치수(治水)에 고심했다. 인드라바르만 1세는 연중 물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 국민의 염원을 실현시키기 위해 인공저수지라는 획기적인 발상을 실천에 옮겼다. 그것이 최초의 인공저수지인 인드라타타카다. 이곳의 물은 수도인 하리하랄라야 시민들에게 식수를 제공하고 농사에 필요한 물을 공급했다.
인드라바르만 1세의 아들인 야소바르만 1세는 이러한 아버지의 업적을 기려 저수자 한가운데 인공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신전을 얹어 시바 신에게 바쳤다. 초기 사원인 롤레이는 규모도 작고 보존 상태도 좋지 않지만 하나하나의 조각이 매우 훌륭해 야소바르만 1세의 효심을 느끼게 한다.

힌두교 사원 옆에 절이 있으니 모양새가 그렇긴 하다.
여기서부턴 단체분들이 보이기 시작 하는구나.
시간이 흘러 저수지의 흔적을 도저히 알아볼 수 없었다.
하나 하나의 의미를 좆아가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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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루오스 유적을 관람하고 반띠아이 쓰레이로 향하는 마음이 흡족하다.
시대순으로 관람하기로 결정하길 잘 한듯하다.

그런데 정말 반띠아이 쓰레이 가는길 멀구나.
뚝뚝기사 소반이 정말 멀다며 오늘 투어 10$에는 힘들다고 했었는데 너무 깍은 듯 하기도 해서 미안하다.
길도 너무 안좋고 버스나 차가 몊에 지나가면 먼지가 날려대서 고생한다.
한참 걸려서 도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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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띠아이 쓰레이 Banteay Srei : 가장 아름다운 앙코르 유적 중 하나다. 사원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보존 상태가 대단히 양호하고 특히 부조가 훌륭하다. 앙코르에서 복원 작업을 했던 프랑스 건축가들은 이곳을 가르켜 '보석', '크메르 예술의 극치' 라고 표현했다.
반띠아이 스레이는 전체적으로 붉은 빛을 내는 단단한 사암을 사용해 지었다.
상인방 위쪽에 삼각형으로 된 박공벽에 부조된 조각들과 끝머리 장식 부조, 벽감에 등장한 입상 부조 등은 매우 특징적이다. 상인방의 박공벽에는 힌두교의 대표적인 서사시인 '라마야나' 를 입체감으로 표현했다.

먼길을 온 기대만큼 관람하기엔 너무 좋았다.
그러나 앞의 3곳과 달리 이곳은 사람이 너무 바글바글했다.
벽화하나 볼라하면 10분동안 일반 관광객 제외하고 단체관광객 5~6팀은 몰려와서 가이드가 설명하고 있으니 맘편히 보기가 어렵다.
그중에 4팀은 우리나라팀이네.
몇번은 같이 설명도 들어볼까 귀기울였지만 분위기도 그렇고 가이드의 일상화된 말투도 싫고 별 느낌없이 따라만 다니는 듯한 일부 관광객들도 그렇고 자꾸만 사람 없는 곳으로 피해다니게 된다.
사람들이 싫어 한국을 떠난 나 자신을 여기서 새삼스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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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들 참 많이 오는구나...
내일 앙코르왓 구경할때는 더 하겠지...
이쪽에서 아예 일몰때까지 있다가 가려 했는데 별 느낌이 있지도 않을것 같아 그냥 나온다.
 
일찍 관람을 끝내고 뚝뚝데 가있던 태안이가 소반과 얘기를 많이 나눈듯하다.
어제 그녀들의 순수한 의도를 우리가 오해한듯 해서 미안하다.

오늘 관람은 대만족이다.
숙소로 향하여 다시 긴 길을 나선다.
한참을 가다보니 옆에 무언가가 보인다.
여기가 어디니? 쁘레룹?
아~ 일몰 멋있다는 곳? 올커니 스탑!

그런데 날씨도 흐릿하니 그렇고...
일몰보러 올라가 잇던 사람들 다 내려오고 있다.
쩝... 어차피 나중에 또 와볼텐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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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레룹 일몰이 유명하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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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안좋고 시간도 놓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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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또 올텐데 뭐.


씨엔립에 도착했다.
원래 주려했던 10$에다 팁으로 2$ 더 주자 내내 반띠아이 쓰레이 멀다고 투덜거렸던 소반 기분이 풀어지며 좋아한다.
막상 저녁되니 할것도 없고 해서 Kon에게 전화해서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대신 얘기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프놈펜에 다시갔다고 한다.
어찌된거지?
부모님이 아프시다고, 이런... 위독하신걸까?
그래서 프놈펜에 가 있다가 어제 왔는데 온지 얼마 안되서 바로 또 갔다니 많이 아프신것도 같다.
나중에 또 통화해서 안부를 전해주고, 씨엔립오면 연락해 달라 부탁한다.

샤워한 후 근처에 있는 리틀월드G.H에서 김치찌개를 시킨다.
숙소 세탁서비스가 엉망인것 보고 근처에 맡기려니 헉! 1kg/2$ !! 다 똑같다.
숙소는??1.5$ , 젠장, 티셔츠 몇벌 사겠다. 귀찮지만 내가 빨기로 한다.
친절한 리틀월드 어른신께서 밥은 많이 주셨는데 입맛이 내가 고급이 됐나?
웬지 맛이 없는 느낌이다. 분명 든든히 먹었는데도 배가 안채워진 느낌이다.
 
슬렁슬렁 센터마켓쪽으로 걸어왔다.
어설프게 바기지를 씌우려 한다.
베트남에서 단단히 연습하고 왔어요..

T 하나 사고 올드마켓 부근까지 걷는다.
인간들 정말 바글바글하다.
어디서 맥주나 할까 해서 두리번 거리다 '수프드래곤'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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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나 한국분들 참 많다.
2층에서 바라보자니 한 300~400명 쯤은 우리 한국 사람 보는 것 같다.
여기까지 와서 동네 시끌하게 싸워대는 두 내외분은 뭐냐...
피자대짜 하나와 맥주 한잔 하니 정말 나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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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레드피아노&#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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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블루 펌프킨&#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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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수프드래곤&#39; 2층에서


너털걸음으로 돌아오며 근처 가게에 들러 인터넷을 한다.
써니누나가 요즘 왜 연락 없냐고 궁금해 한다.
블로그를 만드셨구나.
나도 한국에 가면 한번 여행일기 블로그 만들어 봐야지.

어?? 베트남의 Phuong 에게서 메일이 왔다.
한국에 가서야 메일 열어볼거라고 말했는데 미리 보낸나 보다.
내가 인삿말 알려준 'An Nyung Haseyo!' 까지 적어 보냈다.
감격의 도가니... 답장을 열심히 영작하는라 머리에 쥐가 난다.

정다웠던 사이공이 그립다.
피곤하니 그냥 침대에 쓰러진다.

숙소가 또 맘에 안든다..


회상 : 여행은 일탈이다.

여행을 떠나기전 도올 선생이 쓴 ' 앙코르 와트, 월남가다' 를 읽었었다.
단지 일주일 정도를 여행했으면서도 놀라운 정도의 느낌을 책 두권에 쏟아 담으셨었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런 정도의 감흥을 경험하고 또 어떻게 나중에 떠올리고 연구를 해서 책으로 내셨는지 의아해 했었다.
나름대로 감명받았기에 이분이 추천하신 연대별로 앙코르왓 관람을 꾀했었다.

하나하나의 돌조각들이 우리에게 무슨말을 전하려 이자리에 있는걸까, 그 의미를 좆으려 공부도 했었고 놓치지 않고 이해하려 꽤 노력을 했다.
관람하는 동안 책 한권을 일부러 준비해서 하나하나 글씨에 밑줄을 쳐가면서 사진도 담았었다.
그냥 지나치면 이것들은 그냥 하찮은 돌덩이 밖에 되지 않기에...

내 인생에 이런 돌덩어리들이 어떤 변화를 줄거라고 생각진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꼭 한번 가서 보고 싶었던 열망들이 풀어지면서 무언가의 성취감에 희열을 느꼈었다.
드디어 목적했던 이곳에 왔구나...
그렇게 꿈꾸었던 장소에 내가 서있구나...

가슴 아프고 시린 과거들로 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 쳤던 많은 시간들...
그 어떤 변화를 가지고 싶고 계기를 만들고 싶었던 상황에서 이번 이국으로의 배낭 여행은 정말 공포스러웠었다.
모든것이 처음이었던 이번 여행이, 나도 한다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리고 행복하게 이곳에서 살아 있음을 느꼈다.


< '앙코르와트, 월남가다' 의 프롤로그 中>

여행은 이탈이다. 그런데 이탈이란 즐거울 수도 있는가 하면 동시에 매우 공포스러울 수도 있는 것이다. 열차가 궤도를 이탈하면 공포스러운 일이 벌어진자. 그러나 우리의 삶은 열차의 궤도와 같은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도 물론 수없는 궤도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보통 "루틴"(routine)이라고 부르는 생활의 궤적,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정한 길들은 열차의 궤도와 같이 이탈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의 절제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궤적들은 오히려 이탈을 통해 새롭고 참신한 생명력을 휙득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의 궤도는 차가운 쉿덩어리의 평행선이 아니라 실타래처럼 엉켜져 있는 따사로운 핏줄의 그물과도 같은 것이다.
 
보통 이러한 궤도속에 갇힌 인간들이 가장 손쉽게 이탈을 추구하는 방식이 "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술의 이탈은 너무도 일시적이고 너무도 표피적이고 때로 가식적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새로운 이탈의 궤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방과후, 혹은 퇴근길에 주막집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이탈의 멋은 표피적인 구라꾼들의 자기기만적인 언설이나 행동의 루틴속에 또 다시 오염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여행은 확실이 보다 매력적인 이탈의 한 방식이 될 수가 있다.
 
이탈이란 새로운 체험의 획득이 없이는 무의미한 것이다. 단순한 이탈은 빗나감이며, 외도의 행각으로 얼룩질 뿐이다. 술이 형성하는 이탈의 특징은 그 관계망이 한없이 진부하다는 것이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분위기 속에서 술보금자리를 틀어본들, 남는 것은 망가지는 몸밖에는 없다. 여행이라는 이탈의 매력은 근원적으로 우리삶의 보금자리를 떠난다는데 있다. 그래서 새로운 체험을 획득한다. 새롭다는 것은 즐거운 것이며 또 공포스러운 것이다. 그러니까 공포를 느낄줄 모르는 사람들은 결국 새로움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의미있는 여행이란 진실로 공포스러워 하는 것이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