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일간 동남아 여행일기 52일째>
캄보디아 프놈펜 2일 
2007/01/25 (목)  날씨 : 너무 시원한 곳 익숙해 진건가? 찐다 쪄!

Imagine - John Lennon
 
밤새 배가 쓰라리고 아파와서 뒤척이며 잠을 못잤다.
겨우 비상약을 먹고서야 조금 잠을 잤다.
한동안 몸이 괜찮은가 싶었는데 여행 떠나기전 걱정했던 건강이 좀 우려된다.

어제 못 쓴 일기를 쓰고나서 투어때문에 로비에 내려가 봤는데 어젯밤 부킹했던 가이드 없이 가는 버스시티투어 미니멈 6명이 모이지 않았다.
그래 이왕 이런것 잠이나 푹 더 자자.

좀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 대충 때우고 근처의 뚝뚝을 10$에 흥정한다.

첫 목적지로 킬링필드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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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건강히 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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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사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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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자그마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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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들이 너무 말랐다...

시내를 벗어나 가는 길이 만만치가 않다.
포장 되지 않아 울퉁불퉁에 먼지가 엄청 날려댄다.
뚝뚝기사가 잠시 서더니 마스크를 사온다.

길가에서 보이는 소들이 참 보기 안스러울 정도로 야위었다.
왜 이렇게 마른거야? 그렇게 먹을것이 모자른 건가?
어쩐지 식당 고기맛이...

 


킬링 필드 : 1975년 4월부터 1979년 1월 사이에 폴 폿 Pol Pot 이 만행을 저질렀던 장소 가운데 프놈펜과 가장 가까운 쯔응 아익 Cheoung Ek 을 일컷는다. 프놈펜 근교와 뚜얼 슬렝 Toul Sleng의 사람을 고문 한 후 처형한 곳으로, 당시 집단 매장됐던 8,900여 구의 시신은 1980년이 되어서야 발견됐다. 총기는 비싸다는 이유로 쇠막대기, 팜나무줄기 등을 이용해 처형했다고 한다.

현재는 크메르 양식의 킬링 킬드 위령탑이 세워져 있고 집단 학살의 장소였던 웅덩이가 곳곳에 남아 있다. 위령탑은 훈센 정부가 만든 80여m 높이의 탑으로 사망자들의 해골을 탑 가득 모아놓았다. 사실 큰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는다. 과거의 만행을 떠올리면 몸서리가 쳐지면서 마음이 무거워 진다.

<이하 출처 : 100배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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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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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보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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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웅덩이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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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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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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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트리, 해석하기가 싫다...


여행객들 중에는 프놈펜을 일부러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 이곳은 너무 암울해...

이곳에선 그냥 아무 얘기 할 것도 없었고, 있는 것 조차도 꽤 무거운 중압감이 들었다.
사진 찍기 조차도 꺼려 졌으며 와 보길 잘한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인간의 역사이고 잊지 않아야 할 모습이지...

씁쓸한 방문 후 돌아가는 길에 뚝뚝기사가 여기서 가깝다며 사격장으로 이끈다.
사실 이게 할짓인가 하면서도 호기심을 이길 수는 없었다.
(사람 이렇게 죽은 것을 보고 총 쏠 마음이 제 정신으로 할짓인가 하는 생각은 이런 투어가 있다고 했을때부터 가진 마음이었지만, 나는 생전 공기총 말고 진짜 총을 쏴본 적이 없다. 베트남 구찌에서 한 번 쏴보고 싶었는데 그냥 지나쳤고 이곳에서도 망설였지만 다음엔 기회가 없을 것을 알기에 정말 죄스러운 마음이지만 가봤다. 이번 여행중엔 안 해봤던것 다 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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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가본듯 하당 --;

여긴 도대체 어떤 곳이냐...
허름한 문을 열고 들어서자 메뉴판을 들고 직원? 이 나타난다.
총을 고르다가 그냥 리볼버권총을 쏜다고 하자 왜 남자가 여자총을 쏘냐며 장총을 권한다.
싫어... 그냥 한번 쏴볼래... 딴총들은 비싸기도 하고...
콜트 권총으로 고른다.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실내로 들어간다. 시범 한번 보여주고 쏴보란다.
흠. 별거 아니네 뭐...금방끝나니 조금은 아쉽네.


뚜얼 슬렝 박물관 : 프놈펜의 대표적인 볼거리. 캄보디아의 기나긴 슬픈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원래 뚜얼 슬렝 쁘레아 고등학교였던 곳으로 크메르 루주가 집권하면서 제21 보안대 본부(S-21)로 용도를 변경해 사용했다. 전 정권의 관리를 심문 및 고문하거나 정적들을 숙청하기 위해 이용했던 곳. 크메르 루주 통치 기간인 1975년 4월에서 1979년 1월까지 2,000만 명이 들어가서 불과 6명밖에 살아 나오지 못했을 만큼 악명 높은 장소다.

건물 내부에는 감옥과 신문하던 모습, 그리고 이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흑백 사진이 가득 걸려있다. 최근에는 생존자의 컬러사진이 젊은 시절의 흑백 사진과 함께 걸려있는 전시실과 비디오 상영실을 신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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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독하군.
사람들 모두 숙연한 모습으로 거닌다.
'웃지마세요' 란 경고 마크가 유난히 뜨인다.
인간을 위한 한 사상과 이념 대립이 어떤식으로 인간들에게 남겨졌나... 슬프다.

이런 곳은 오래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뚝뚝기사가 안보인다. 뭐야... 기다려도 기다려도 안온다 우씨...
예상은 했지만 한 20분 정도 기다리고 있으려니 미안하다고 점심먹고 왔다고 나타난다.
얘기라도 미리 해주고 가던가 뭐얌.

러시안 마켓으로 가서 대충 둘러본다.
역시 시장이다 보니 음료니 먹을것이 싸다.
우리야 뭐, 살것도 없고... 목이나 축인후 바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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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탑 : 1953년 11월 9일, 프랑스로부터 정식으로 독립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탑. 앙코르왓 의 중앙탑을 본떠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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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R 짜리 지폐에 그려 있다지?


박물관이 2시에 열기에 도중에 독립기념탑 잠깐 들러서 사진만 한방 찍고 왓프놈으로 향한다.
그런데 하필 왜 입장권 끊는 바로 앞에 딱 세우는 거냠 ^^;;;

왓프놈  : 왓 프놈은 27m 언덕위에 있는 사원으로 '프놈펜'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곳이다.
큰 물난리가 났을때 펜 Pehn이라는 여인이 강가로 떠내려 온 부처상을 발견하여 이 절에 봉안하였는데, 이 여인의 이름과 사원의 이름을 합쳐서 지은 이름이 프놈펜이다. 왓 프놈은 공원처럼 꾸며져 있어 휴식을 취하기에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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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계단 주위로 구걸하는사람들이 너무 많다.
과거 암흑시대의 피해자들인지 모두들 신체가 부자유스러운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런 곳밖에 갈 곳이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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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죠? 푹 잠을 자두세요

언덕꼭대기의 사원 안으로 들어가려니 애들이 몰려와서 신발을 보관해주려고 한다.
별로 필요 없는데...
얘네들은 학교 안가나... 팁으로 얼마를 벌며 가정은 어떠할까...

널찌막히 예쁘게 꾸며놓은 공원 같은 느낌이였지만 팍 트인 이곳에서 입장료를 받을 구실은 무엇인지...

내려오니 그새 우리의 뚝뚝기사 한없이 골아 떨어져 있다.
피곤한것 같이 보여 방해하지 않고 잠시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며 조금 기다려 준다.

국립박물관 : 고대 크메르 제국의 조각 및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는 곳. 앙코르 유적 이외에도 푸난과 첸라 왕조의 유적 등 총 5천여 점에 달하는 전시품을 볼 수 있다. 앙코르 유적 중에는 현지에서 제대로 관리가 안돼 옮겨놓은 것도 많다.

크메르의 유적이 있는 곳답게 건물 양식도 크메르식으로 되어 있다. 프랑스 사람이 설계했는데, 정문은 앙코르 유적에 있는 반띠아이쓰레이 사원 Banteay Srei의 문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박물관은 사각형으로 중앙의 정원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있다. 입구에 해당하는 동쪽 전시관에는 초기 앙코르 시대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다. 동쪽 전시관 왼쪽의 남쪽 전시관에는 앙코르 시대 이전의 자료가 보관돼 있다. 서쪽 전시관은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앙코르 톰과 바욘에서 가져온 조각상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그밖에 중앙 정원에 만들어놓은 정자에는 '문둥이 왕' 조각상 짐품이 모셔져 있다. 박물관 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제한되며 영어와 프랑스어 가이드를 $5에 고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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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내부는 그렇게 크지는 않았고 돌아다니는 동선도 괜찮았다.
그런데 아예 사진을 못찍게 하려면 그렇게 하던가, 찍으려면 돈을 더 받는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조금 열받어서 몰래 찍는다.
한켠에는 "로딘" 미술 작품전도 하는데 오히려 이곳이 더 삼엄한 경비를 한다. 여기만 에어콘도 틀었네.

이제 앙코르 왓 관한 책들을 다시 읽어야 할 때가 온것 같다.
오기전 많은 책을 읽고 왔지만 벌써 기억이 가물하다.
내일이면 씨엔립을 가게 되는구나...

왕궁 : 전형적인 크메르 양식으로 되어 있으며 프놈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다. 1866년에 건설된 황금색 건물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왕궁은 엄밀히 말해 왕궁과 실버 파고다 Silver Pagoda로 구성되어 있다. 정문에서 약간 남쪽, 왕궁과 실버 파고다 중간 쯤에 있는 입구를 통해 왕궁을 거쳐 실버 파고다로 나오는 구조다.

왕궁은 현재 국왕의 증조할아버지인 노로돔 왕 King Norodom 때에 수도를 우동 Udong에서 프놈펜으로 옮기면서 새로 건설한 곳으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왕궁 밖에서부터 한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찬차야 궁 Preah Tineang Chan Chaya. 똔레삽 강을 마주하고 있는 건물로 캄보디아 전통 무용을 감상 할 수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왕궁 안의 중앙 건물은 왕이 대관식을 치르던 곳으로 쁘리아 띠티앙 떼웨아 위니 쯔아이 Preah Tineang Tevea Vinicchay라 불린다. 프랑스의 신탁 통치에 동의하는 서명을 했던, 캄보디아 입장에서는 치욕적인 장소 이기도 하다.

중앙의 탐에는 앙코르 유적에 있는 바욘을 본뜬 얼굴 조각이 사방에 조각되어 있다. 왕궁 정면으로 통하는 문은 승리의 문 Victory Gate으로 왕과 왕비만 출입했으며, 현재는 국빈 방문시에만 사용된다.

입구를 지나 화살표를 따라 왕궁으로 들어가면 영화를 상영하던 작은 건물이 먼저 나타난다. 씨하눅 국왕 King Sihanouk이 만든 곳으로, 그는 젊은 시절 영화에 몰두해 자신이 직접 감독과 주연을 맡기도 했다.

완국 안에는 프랑스식 건물도 있다. 식민의 잔재로 1870년에 나플레옹 3세가 캄보디아 왕실에 기증한 조립식 건물인데 모든 자재를 프랑스에서 공수해왔다고 한다.

실버 파고다 : 이름 그대로 은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중앙 사원의 실내 바닥은 1.1kg의 은으로 된 타일 5천개를 깔아서 만든 것. 1903년에 깔았는데 크레르 루주 Khmer Rouge군에 의해 점령되기 직전에 뜯어냈다고 한다. 또한 실버 파고다 안에 있는 90kg짜리 순금 불상에는 9.584개의 다이아몬드가 장식되어 있는데, 제일 큰 것은 25캐럿이나 된다고 한다. 사원의 안쪽 벽에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총길이가 600m나 되는 벽화로 부처의 생애나 라마야나 전설에 관란 내용이 담겨있다. 실버 파고다 밖에는 캄보디아 전통 의상과 생활상 전시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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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왕궁.
이번엔 아예 속 편히 찍으려 3$을 더 주고 카메라 촬영권은 샀지만 실내부분은 못찍게 한다.
돈독이 아주 제대로 올랐군. 입장료로 정말 많이 벌겠다.

오늘 시티투어의 마지막 방문 하는 곳이라 그래도 열심히 돌아다니려 했지만 뚝뚝기사가 얘기한 것처럼 2시간까지는 걸리지 않는다. 천천히 돌아봤는데도 1시간이 안걸리네...

마지막 즈음 민속악기 연주하는 분 앞에서 한동안 음악에 심취하며 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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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랑 1시간정도 말씨름하고 놀았다.

뚝뚝기사와 5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정문앞에 다시 오니 3시 40분이다. 또 어디 간거야 대체.
어쩐다.. 피곤해 죽겠는데 쩝 그냥 기다려본다.
입구 앞에서 꼬마아이들이 물을 팔며 계속 말을 건다.
시로시로... 거의 폐장시간이 가까와서 그런지 물값은 계속 싸져만 가네.
할것도 없고 그냥 길에 주저 않아서 사람들 구경하며 뚝뚝기사 마냥 기다린다. 이게 뭐람...

하도 심심해 혼자 걸어서 똔레삽 강가변을 둘러보고 온다.
강바람에 한풀더위도 식어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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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정말 너무한다.
5시가 넘어갔다.
근처에 있는 뚝뚝기사들이 그 기사 안올거라며 자꾸 말을 거는데 누구 약올리는 건가? 화만 난다.
5시 40분까지 2시간 기다리다 결국 다른 뚝뚝 1$ 주고 숙소로 온다.
내가 왜 기다렸냐... 허탈 하다.

숙소앞에 오니 우리 뚝뚝기사 Oh Sorry~ 하며 달려온다.
갔더니 없더라나? 정말 짜증의 연속이다.
말하기도 귀찮아서 원래 10$에서 차비 1$ 뺀 9$주고 끝냈다.
제대로만 마지막 태워줬으면 팁 주려 했는데 안됐다 넌.

무더위에 좀 지쳤나 보다.
한참을 쉰후에야 저녁먹으러 나서게 됐다.
어딜갈까 하다 책에 나와있는 식당을 한번 가보려 한다.

문앞에서 아까의 뚝뚝기사가 또 반가운체 하며 달려온다.
으... 왜 얘만 자꾸 오는거야?

책에 나와있는 주소를 보여주며 아냐고 하자 갸우뚱 하더니 1$ 달란다. OK.

지도까지 펼쳐가며 한참을 가는데 이상하게도 없다.
이상하네? 안되겠다 싶어 핸드폰 통화 빌려주는 노점에 들러 전화를 걸어보게 한다.

몇마디 나누더니 "Oh My God!" 가 귀에 들어온다.
헐. 책에 나와있는 주소가 틀렸구나.
왔던길 되돌아 가보니 캐피톨 숙소에서 걸어서 5분 거리네 ㅋㅋ.

좀 미안한 듯도 해서 1$ 주고 돈을 더 줄까 하다(더 달라기에)그냥 아까일도 그렇고 마침 잔 돈 뒤지니 500R 있기에 그거 더준다 메롱~ 낮의 일 복수 했당.

식당에 들어서자 마자 맥주 판매 하는 아주머니들이 달려든다.
자기네 홍보 하는 맥주를 마시라고 서로들 부대끼는데 약간 놀랐다.

아무래도 메뉴 선택을 잘못한것 같다.
다른 사람들 많이 먹는 전골 요리(씁쯔낭 다이 인것 같다)를 먹었어야 했는데, 호기심에 비프 볼케이노를 시켰다.
맛있긴 한데(손수 세팅해주시고, 구워주고, 소스 만들어 주고) 양이 좀 적은 것 같다.
볶음밥 하나 더 시켜먹고 더 시켜 먹을가 하다가 그냥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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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프 볼케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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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라 덮밥 하나 더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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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버 비프 수프'


돌아오는 길 숙소 바로앞에 상점이 있는것도 몰랐네. 디따 싸다, 왜몰랐을까.

간만에 쉬면서 상념에 빠져본다.
이제 슬슬 한국에 돌아갈 날을 생각해 본다.
내일이면 이번 여행의 목표였던 앙코르 왓을 가게 된다.
그 후엔 어찌해야 할까...

회상 : 내가 중학교를 다녔었던 80년대 초 간간히 학교에서 단체로 극장에 간적이 있었다.
그때 대한 극장에서 "킬링 필드" 란 영화를 봤다.
나중에 'Mission' 등 여러 영화를 만든 롤랑 조페 감독의 감동적이고 슬픈 영화였다.
왜 이 영화를 단체 관람 시켰는지, 왜 이 영화가 역대 흥행랭킹 상위에 한동안 있었는지 생각하긴 싫지만 다분히 군사정권 휘하의 학창 시절을 보낸것도 한 이유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아직은 냉전중이였지.

시간이 흘러 여러 책을 읽다보니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킬링필드나 폴폿에 관한 것들, 캄보디아와 베트남 전쟁에 관한 것 등등이 다른 면으로 해석되어지고 또 과장되어 있는 것일수도 있다는 글을 접했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 '킬링필드' 란 영화는 꽤 슬프고 암울했었다.
영화 마지막 엔딩 크레딧때 흐르던 John Lennon의 Imagine 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20년이 훌쩍 넘어 그 영화의 장소를 찾아 갔다.
거니는 내내 머리가에선 그 음악이 들리는 느낌에 자연히 감성적으로 한숨을 내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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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타탄생
<84일간 동남아 여행일기 23일째>

방비앵 -> 비엔티엔 1일  
2006/12/28 (목)   날씨 : 후~ 덥다


일찍 짐을 꾸려 아침 루앙프라방 베이커리에서 먹는다.
그 동안 좀 싸다는 이유로 옆가게에서만 먹었는데 마지막 날 먹다보니 참 맛나기는 하다.
여기저기 테이블에서 한국분들 많이 보인다.
우리는 이제 떠나는 사람들. 며칠동안 정들었던 방비엥을 떠나려니 조금 아쉽다.
안가본 곳도 있긴 하지만 모두 다 볼 수는 없는 일. 앞으로 갈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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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의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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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크기도 하다. 반씩 나눠먹는다.


써니 누나가 늦게 나온다.
자전거 타고 다니시는 안진헌씨도 다시 만난다.
아침 10시에 떠나는 우리를 두분이서 배웅해준다.
누나는 라오스 남부 까지 갈꺼라 하고 안진헌씨는 얼마후 방콕 들어갔다가 다시 베트남으로 오신다고 한다.
그곳에서 다시 뵐수 있을지... 누나는 아주 한참후에 방콕다시 갈때 연락 하기로  한다.

로컬버스 이용해 보고 싶었는데 그냥 여행자용 미니 버스를 이용해 간다.
한숨 잔다. 일행중 옆자리 일본인 남자 둘은 어제 방가로에서 잠깐 본 애들이네.
얼마전 배운 "씨이쏙~" 얘기해가며 잠시 말 붙이고 얘기해도 사실 여자가 아니면 별로 관심이 안가는건... ㅎㅎ
이상하게도 일본 여행객 많이 보이긴해도 일본사람끼리 남자 여자 같이 어울리며 다니는 것은 잘 보지 못한다.
원래 싫어들 하나??

한참 잔 후에 드디어 비엔티엔 시내로 진입.
역시 사람들 얼굴 때깔부터가 틀리긴 하다.
가까이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RD 게스트 하우스에 갔으나 이미 풀.
얼마전 다시 리모델링 하여 개업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알고보니 사장님도 바뀌셧구나.
잠시 앉아 있다보니 어제 떠났던 지영씨와 MTB자전거 선생님들을 뵌다.
잠깐 인사 나누다가 깨끗은 하지만 어차피 방도 없으니 짐을 맡겨 놓고 다른 숙소를 알아보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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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남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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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방학이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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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크게 드럼 연습을...



아무래도 수도라 그런지 예상은 했지만 그동안 묵었던 다른 라오스 숙소들보다는 이곳 비엔티엔 숙소들은 비싼 축에 속한다. 가까운 옆에 있는 다른 여러곳도 싼데도 있긴 한데 가격에 비해선 컨디션들 안좋은 곳이 참 많다.

다른 여행기에서 읽었던 추천 업소 찾아가 보니 비싸긴(?) 해도 아침식사 포함해 괜찮은 것 같다.

어느 도시든지 처음 도착 해서 보금자리를 찾는 일은 고달프기도 하고 사실 별 차이도 아닌데 꼼꼼히 이리저리 비교해 가며 다니는 것이 번거로울때도 많다.
어느 정도 조건만 맞으면 일단 짐부터 푸르고 쉬면서 여행을 즐기고 나중에 천천히 다른 숙소를 알아보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웬지 더 좋은 곳이 있지 않을까? 같은 돈에 더 괜찮은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많은 곳을 둘러 보는 것 같다.
일단은 이곳 남푸GH가 너무 깔끔해서 좋기는 하다. 다행이 태안이가 같이 있어서 혼자 다니는 것에 비해선 같은 돈을 주더라도 항상 좋은 숙소에 머물수가 있다.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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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정리 후 로비에서 체크인을 하고 나오니 벌써 태안이는 어디선가 오토바이를 빌려왔다.
일단 바로 앞에 위치한 "남푸커피" 에서 점심을 먹는다.
입구에 한글로 "까오삐약"에 대한 선전구가 붙어져 있고 유명하긴 한 곳이다.
소문대로 맛있당~ 싸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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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단 자그마한 '남푸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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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 삐약 ' 난 팍치 상관없어요~


자 이제 가이드북 추천 루트로 명소들 한바퀴 돌아 볼까??
오토바이 뒷자리에 않아 시내 풍경을 둘러보며 가다보니 참.. 그래도 한나라의 수도인데 이렇게 빈약한가? 하는 느낌이 든다.

일단 제일 먼저 멀리 있는 곳으로 향했다. 탓루앙.

라오스는 유적보존에 너무 무관심한듯 한 느낌이 또 든다.
여러 문화재 들이 훼손이 심하다.
국가의 상징이라고 까지 여기는 이곳이 이정도니... 다른 곳은 어련하겠느냐만 아직 귀중한 문화재의 보존에 힘쓸 여력이 없는 걸까 아니면 인식이 아직 없는 것일까는 모르겠다.


다시 나와 독립 기념탑쪽으로 향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돌아 가는데 어? 뭔가 한글이 보인다??
'조선-라오스 청년친선센터'?? 오호~ 호기심에 사진이나 찍고 가려고 오토바이 세우고 길건너 가니 1층은 '조선민족료리식당' 이다.
캄보디아에 '평양랭면' 집 이야기는 많이 들었었지만 이곳 비엔티엔에 북한 식당이 있다는 얘기는 못들었는지라
호기심에 살펴보고 있다보니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온다.
헉! 빨간 원피스 제복의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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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라오스 청년친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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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전화? ^^;;


"안녕하세요~"
"지나가다가 우연히 보고 구경 와봤어요"
"지금은 영업시간이 아니니 저녁 시간에 와보세요"
"네. 저기 .. 음식값이 어느 정도 하죠? "
"여러 종류가 있는데 랭면의 경우는 6달러 정도 합니다"

영업시간이 11:30분~14:00, 17:30~22:30 이라 중간 쉬는 시간인 모양.

저녁때 한번 와볼께요~ 하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긴 했지만 좀 떨어진 곳에서 태안이와 마주보며 얘기 나눈다.

와~~ 정말 목소리가 옥이 굴러간다는 표현이 어떤건가 했는데 이거구나??
간만에 살결이 백옥같고 하이얀 얼굴 가진 여인에다 그런 목소리까지 겸비해 들으니 둘 다 마음이 마구 설레인다.
저녁때 가능하면 와봐야 겠다.

길을 가다보니 풍악소리가 어디선가 쾌 크게 들린다.
뭐지??
무슨 잔치인지 모두들 흥겹게 춤추며 노래하며 놀고 있었다.
루앙프라방에서 보았던 그 특유의 군무?를 펼치면서.(연말이라 그런지 이후로도 시내에서 많이 이런 풍경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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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독립기념탑.
멋진 풍경에 설레이며 들어갔는데 차라리 밖에서만 구경할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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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에 이렇게 많은 기념품가게들이 있으리라곤 상상을 못했다.
게다가 오만가지 낙서가 즐비했고 멋들어진 주위 공원에서 보는 아름다운 풍경에 비해 허술한 내부에 실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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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만가지 낙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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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허다. 대한민국...


내려오는 계단에서 벽에 걸린 코끼리 그려진 티셔츠를 보고 너무 귀여워서 태안이와 깔깔 대고 웃다보니 가게 아줌마가 와서 자꾸 입어 보란다. 안산다고 하는 것 얘기 하다보니 너무 재미 있어서 기분 좋게 사게 되버렸다.
마침 옷을 갈아 입어보고 잘 맞나? 하고 있는데 또 윗 계단에서 다른 가게분이 내려 오다가 내모습을 보고 웃으신다. 같은 보라색 빛깔 옷을 입기도 했고 우리 가게 아줌마 기념촬영하라고 카메라 찍어 주신다. 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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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 헤메다가 '왓씨싸껫' 도착 했으나 문을 닫아 버렸다(4시에 문 닫는다)
바로 앞에 있는 '왓파께우' 와 함께 내일 보기로 하고 근처 '왓씨므앙' 으로 간다.

입구 앞에서 참 많은 가게들이 갖가지 과일과 꽃과 향 같은 것을 판매 하였는데 현지인들이 많이도 사가신다.
안에서 기도 하는 것 한참을 구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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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닫은 '왓씨싸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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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씨므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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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과 새가 같이 있으니 묘하다


여자들 앉은 자세 따라해 보는데 꽤 힘든 자세이다.
자연스레 앉는 모습을 보며 웬지 그동안 보아온 태국도 그렇고 여자분들 유달리 허리가 잘룩한 느낌이 그것 때문은 아닌지 엉뚱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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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씨므앙' 가까이 위치한  '씨싸왕웡 왕 동상' 부근에선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한 애가 동상에 공 튀겨가며 축구도 하고  농구한다.
어이 상실. 거참..
우리와는 생각이 틀린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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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싸왕웡 왕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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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놈이 농구공을 튀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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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탓담'


'탓담' 보고 시내를 둘러보다 메콩 강변쪽 카페에서 해 저무는 것을 바라 본다.
대충 일정을 생각 하다 보니 아무래도 이곳에서 베트남 하노이로 가는 버스 안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
가능하면 내일 바로 베트남으로 떠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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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서양인은 뽀다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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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연이 적어서 일까? 라오스는 하늘 색깔이 참 예뻤다


숙소와 휴식을 취하곤 고민하다가 저녁식사를 위해 '조선민족료리식당'으로 간다.
아는길로 가면 될것을 괜히 또 지름길로 간다 하다가 한참 돌아서 갔다.
가는길 휘황찬란한 조명빛의 나이트 클럽들을 몇군데 본다.
그래.. 수도인데 이런데가 없겠어??

겨우 도착은 했긴 했는데 어라? 손님이 우리 밖에 없다.
7시 30 분 쯤이라 피크 타임일 줄 알았는데 뻘쭘 하긴 하다.
삼겹살이니 그런것은 돈만 많이 들것 같아 저희가 배낭여행중이라 1인당 10$ 정도로 추천 좀 해달라 하니 '비빔밥'과 '돌곱장찌개', ' 파전' 을 권한다.
김치 같은 밑반찬도 따로 돈을 받는 다고 하니 일부러 시킬 필요까진 없고 무난한 메뉴 선택 이였던 것 같다.

찬찬히 둘러본다.
무대앞 대형TV앞 테이블로 안내해 주셨는데 일부러 비디오테이프(비디오CD인지는 기억이 가물)를 가져와 틀어 주신다. 노래방용인지 자막과 함께 여러 노래가 나왔는데 가사들이 모르는 단어가 꽤 많다.
간간히 뜻을 물어가며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좀 민감한 '수령님' 등등의 가사가 많이 보여 참 보기 난감했다.

드럼과 앰프 믹서 컴퓨터 등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흥겨운 쑈나 연회도 펼칠듯 한데...
영리를 위한 곳이라 그런지는 모르지만 크리스마스 트리도 보이고...
기념 사진 촬영 인화도 액자에 넣어 바로 해주고(돈 받는다), 인삼차 구매 코너 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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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간만에 땀 흘려가며 우리 음식을 먹는다.
모든 식재료들을 다 북한에서 공수 해 온 것인가 물어보니 재료만 라오스 것이고 조미료만 가져온다고 한다.
여러가지 질문에 친절하게 설명 해주는 '김향'씨. 계속 찻잔이 빌때마다 인삼차를 따라주니 마치 우리가 이곳을 전세 낸듯한 느낌 마저 든다.
너무 맛있어서 밥하나 더 시키고 고추장(우리식 고추장이 아닌 양념장 비슷했다) 더 달라고 하여 또 비벼먹으니 정말 배가 터질듯 했다.

그래도 아쉬움에 시킬까 말까 한 파전까지 시켜 본다.
태안이도 배불러 못 먹는다더니 맛있다고 게눈 감추듯 먹는다. 물론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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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비빔밥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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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특이한 '돌곱장찌개' . 너무 맛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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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러도 들어간다 '해물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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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식을 빼놓을 순 없지.


쑈도 기대 했으나 우리 둘밖에 없는데 해달라고 하긴 좀 ^^:;
우리가 나갈때 쯤에야 현지분들 한팀 들어왔다.(거의 9시 쯤?)

흔쾌히 기념사진 찍어주시고 아쉬운 작별.
오는 중에도 둘이서 가보길 정말 잘했다고 좋아했다. 우연찮게 길을 잘못 들어 발견한 것도 좋았고 오토바이 빌리길 잘했다고 태안이 칭찬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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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장 더 찍어달라 할껄.. 하필 눈을 감았네...


숙소로 오는중에  계속 RD게스트하우스 주변을 배회하며 아시는 분 혹은 한국분 없나 찾았지만 다 안보인다.
메콩강변엔 여러 음식점과 카페들이 참 많다. 방비앵처럼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술한잔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배도 부르고 좀 귀찮기도 하다.

그러던 중 이름도 이상하고도 야릇한 스낵바(?)가 보이기에  두 남정네 호기심에 끌려 짐을 모두  숙소에 놓고 의관정제 하고 가 보았는데 들어서는 순간 너무 음침하고 분위기 웬지 아니다 싶어서 바로 나와버린다.

또 한바퀴 돌다가 그냥 숙소정원에서 맥주시켜서  이런 저런 얘기 시간 모르게 나누다 보니 누군가 1층에서  창문을 열고 쳐다본다. 아!! 시간이 벌써 11시... 시끄러워서 화났구나 ? 미안 하다는 손짓하고 방에 들어와 침대로 다이빙 한다.


느낌 : 이젠 막연하지 않은 진정한 통일이 다가왔으면 좋겠다.

내 인생에 북한 사람을 만나서 얘기 해보게 되리라곤 상상을 못했었다.
어렸을때 정말 북한 사람들, 공산당들은 온몸이 빨갛고 머리에 뿔이 달린 괴물들인줄 알았다.
그렇게 교육을 받았었다. 매 학년때마다 반공 글짓기 대회, 포스터 대회, 표어 짓기 대회 등 빠지지 않았고, 간첩 신고에 대한 철저한 의식과 '113수사본부' 와 같은 TV물을 보며 자라왔다.

중학교 때도 기억이 난다.
국어책의 한 희곡에서는 남파 간첩의 고뇌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서 실제 모의 연극도 해보았다.

북한사람들도 공산당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구나 알았던 것은 우습지만 초등학교 몇학년 때 인지 몰라도 읽었던 한 만화였었다.
후에 '먼나라 이웃나라'를 쓰신 이원복 교수의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

그 당시 뭐 해외 여행이란 것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무슨 일이라도 해외를 나갈 경우엔 중앙정보부(나중엔 안기부에서 국정원 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에서 반공교육과 해외에서 북한사람을 만났을 경우에 대처방법과 즉각 신고 해야 한다는 그런식의 교육을 따로 받아야 했던 것으로 안다. 모든 북한 사람들이 포섭을 위해 접근을 해 온다면서...

흥미 진진한 여러 다른 나라의 모습을 만화로 즐기며 흠모하던 그 때에 정말 충격적이였던 한 장면이 있었으니 바로 이탈리아를 방문 했을때 만났던 '공산당' 그림 이였다.
버젓히 나라에 공산당이 존재하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으며 괴물이 아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였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만화의 시관이와 병호도 무척 놀라면서 단지 생각과 사상이 틀린 보통 사람이구나 라고 표현이 되었던 것으로 안다.(글 쓰다보니 한번 다시 구해서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어렵겠지만...)

점점 커가면서 내가 정말 많은 북한 사람들이 받는다는 "세뇌교육' 이란 것을 우리가  받고 자라왔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꼈다.
그 많은 여러 목적의 주입식 생각과 사고들이 다르고 틀리다는 괴리를 우리 사회가 변화하며 서서히 바뀌어 가는 과정을 보다보면 어쩔땐 속아온데에 대한 서글픔까지 느낀다.
지금이야 상상이 안되지만 참 많은 책들과 언론과 지도층등등에서 우리의 눈과 귀를 막아 놓았었다.

나야 물론 아무것도 아닌 한 개인에 불과하지만, 학생운동이란 것 해본적도 없고 노동이니 민주화니 이런것 맨날 데모나 하고 최루탄이니 그런것땜에 시끄럽고 거리도 못다니고 콧물, 눈물만 나고 화만 나네 그렇게 많이 생각했었다.
그래도 누군가 몸으로 나서서 사회를 바꿔보려는 꿈이 있었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나마 요즘엔 어느 정도 자기 생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누릴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나 반성을 해본다.

비록 시간은 짧았지만 조선민족료리식당에서의 사람들과 만남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나에게도 아무생각없이 따라 부르며 자랐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는 노래와 조봉암 선생이 부르 짖었던 " 평화통일"에 대한 시각을 그냥 막연함이 아닌 진정 바램의 한 소망으로 가져야 겠다는 꿈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한 사람 한 사람들의 작은 관심과 꿈이야 말로 언젠가 모두의 소중한 결실로 맺어지리라는 것을 이제는 의심치 않는다.

오기전에 읽었던 어느 여행기에서 대충 이런 해외에 있는 북한 식당에 대해 읽어 본적이 있었기에 대충 어떤 경로로 일하는 분들이 오는것에 대한 것은 알았다.(읽어본 바로는 정부에서 보내는 것이 아닌 회사에 취직이 되어 단기 몇년 동안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도 그런지는 물어 보지 않았다. 친선센터도 겸해서 아닌것 같기도 하고)

시종 대화를 나누면서도 가끔은 미묘한 단어 선택에 조심도 하였고 (북한->북조선 등등), 여러 개인적인 이야기나 궁금한 것도 많긴 했지만 일부러 꼬치꼬치 캐묻는 듯한 느낌 주지 않으려 나름 신경 썼었다.

태안이가 난데 없이 물어본다.

" 북한 사람은 배낭여행 다니는 사람 없나요?"

"우리는 그런 거 안합네다."

"..."

녀석 참...

여행을 다니면서 외국인들에게 코리안이라 하면 생각보다 많이 북한이냐 남한이냐며 물어봤다.
그만큼 우리의 위상이 커진건지 아니면 북핵사건과 부시의 '악의축' 발언으로 이슈가 되던때가 얼마 전이라 그런지는 모르겟지만 내가 생각한 것 보다는 훨씬 우리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섬나라 이다.
지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국경이 없다.
많은 외국 배낭 여행객들도 중국에서 끊긴다.
우리가 통일이 되거나 북한이 개방 하면 우리의 좁은 시야가 더욱 터지고 많은 개척 정신을 펼칠 더 넓은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진다.

식당 TV에서 보여주었던 많은 모르는 단어들, 같은 언어를 쓰는 똑같은 사람들이 틀려져 가고 있다. 더 이상 더 차이가 나서 완전히 다른 나라 사람이 되기전에 어서 다시 한가족으로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으면 좋겠다.


Posted by 스타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