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하루가 비게 일기를 썼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았다.
귀국하고 나서 블로그에 일기를 쓰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찬찬히 여행일기장을 읽다보니 한장의 빈페이지가 있는 것이였다.
정말 여행중에는 날짜가 어떻게 지나 가는지 세심히 생각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때가 많다.
하물며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까지 알아채는 것도 힘들다.
일기를 쓸때도 바로 전날 쓴 일기를 보고 날짜를 적었으며 여행일수차도 그리 하였었다.
하롱베이 깟바섬에서 적다가 실수로 한 페이지를 지나쳐서 적었는데 날짜수도 하루를 밀려서 적게 되었나보다. 그 이후로 계속 밀렸었겠지.
이미 '84일간동남아여행일기' 라 생각하고 글을 올리기 시작 했지만 사실은 83일 이었던 것이다.
올린글도 얼마 되지 않았을때라 금방 고칠수도 있었다만 웬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의 일기로 남기고 싶었다.
그것도 일기장의 한 부분 이니까...
<멍청하게 밀려 쓰기는...>
내가 살아온 얼마 되지 않은 날들이지만 이렇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라는 것을 써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때부터 방학일기니, 나날이 일기검사 받던때나 모두 다 대강 적기에 바빴고 그것도 겨우 겨우 억지로 칸수만 채웠었는데 그마저도 게을러 안해가서 많은날을 선생님께 혼나고 꾸중받았었다.
왜 레퍼토리 있잖아? "깜박 잊고 안가져왔어요.."
하지만 가끔씩 초등1학년때의 그림일기서부터 한권에 몇장 쓰지도 않은 코흘리개 일기, 고등학교때 일기, 대갈통이 좀 컸을때의 일기등 모두 조금씩 밖에 안되고 유치한 글들 이였지만 훗날 읽다보면 참 재미있어한 때가 있었었다.
나름 잘 보관해 둬야지 했었지만 어느날 집에 오니 아버지께서 방청소를 하시면서 다 버려버렸다.ㅠ.ㅠ
쓰레기통 가서 다시 다 찾아볼까 했었는데 그러진 못했다.
그땐 뭐 다 옛날일인데 다 잊지 뭐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도 아쉬웠었다.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퇴보라지만 사람은 추억의 힘으로 현실을 더 값지게 살 수 있는 존재라 생각든다.
꼭 무슨 글쏨씨가 있어야만 일기를 쓰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는 아주 쉬운일이다.
하지만 '꾸준히' 라는 점에 대해선 정말 어려운 일임을 내가 왜 모르는가.
여행 떠나기전 일기장을 준비 하면서도 내 스스로 설마 이거 다 못채울꺼야 조금 쓰다가 또 말겠지 자조하긴 했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쉬웠는지 모르겠다.
하루 하루 갖가지 얘기와 기념물로 채워지는게 참 재미있었다.
물론 피곤할때면 그날 못쓰고 다음날 아침이나 낮에 시간 잠깐 날때 밀려서 쓴 날도 있었지만 점차 늘어가는 장수를 보면서 언젠가 마무리 짓는 날 한국에 돌아가서 찬찬히 읽다보면 내가 놀라겠구나 하며 실실 웃었었다.
처음엔 너무 자세히 쓰려다 보니 시간 참 오래 걸렸었다.
페이지도 많이 넘어가고 그렇게 쓴다는 게 약간 고통이였다.
며칠 지나다 보니 요령이라는게 생기기 시작했는데 돌이켜 보면 참 다행이였다.
일기장 중에 2006/12/28일 페이지를 위주로 올려본다.
▶ 일단 여기저기 다니면서 얻게되는 각종 입장권이나 영수증, 차표, 팜플렛, 숙소명함 같은 것 들을 빠뜨리지 않고 모았다.
하루일과를 마치고 맨처음 한일은 일기장 여백에 그것들을 붙이는 작업.(소요시간 1~2분)
두껍거나 너무 큰 것은 그냥 버렸다. 다 짐이 되기에 일부러 안붙였다.
2006/12/09 |
2006/12/28 |
2007/01/26 |
때론 손수 깔끔하게 적어 주셨고 |
때로는 뭔말인지 몰라도 숫자로 ㅎㅎ |
찍혀서 나오면 장땡 |
미니버스 티켓 |
게스트 하우스 명함 |
탓루앙 입장권 |
편의점 영수증과 시내버스 티켓 |
때론 환전영수증과 ATM 영수증 |
호텔 명함 |
▶ 그 다음 한일은 장소와 날씨 날짜 여행일수 적기 (소요시간 15초)
날씨는 가급적 안겹치는 표현으로 |
요거 무척 헷갈린다 ㅎㅎ |
▶ 이번엔 계산기 두들겨 가며 여백에 붙여진 영수증등등을 비교하며 지출내용과 잔액등의 금전 출납 상황 적기(이건 가끔 정확히 안맞는때가 많아 맞춰보느라 시간이 불규칙했다.소요시간 대략10분??정도?)
화폐를 한종류만 쓰는 것도 아니고 현지화폐와 달러, 또 가끔은 환전이나 ATM으로 뽑아서 쓰기도 했고, 또 생각안나는 지출도 적지 않아서 애먹던 때가 있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근소하게 맞다치면 그냥 잡비 처리로 해결했다. 가끔 모자라기도 하고 어쩔땐 남기도 하고 ㅎㅎ. 사실 이런짓도 처음 해보는거라 재미있었다
이날은 태안이가 오토바이를 빌려 내가 입장료를 내었다 |
항상 지갑 톡톡털어 남은돈과 지출계산 확인 |
▶ 이번엔 기상 시간과 어제밤 취침시간 적고 지금 머무르는 숙소와 오늘 식사를 뭘했다 적기.
이런것 까지 쓰기는 싫었지만 빈칸으로 남기는게 더 싫어서 썼다 ㅎㅎ(소요시간20초)
가급적 묵은 방 호수도 적고 느낌도 적고 |
일기쓰기전엔 바로 전날 취침시간을 적었다 |
▶ 이제 본격적인 내용 적기.
전체를 생각하고 느낀 점을 모두 다 쓰려면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생각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정리가 안됐다.
맨처음 한두날을 그렇게 쓰니깐 이건 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일단 눈뜨고 나서 내가 다닌 경로를 입장권과 지출 목록을 비교하며 짤막하게 적으면서 느낀점들도 아 그때 이런 일이 있었었지? 할 정도로만 단순하게 적었다. 그래도 꽉차더라. 칸이 모자라면 포스트잇에 써서 붙였다.(소요시간 15분~20분)
본격적 오늘 일기 |
후~~ 이제 다썻나? |
모자라면 포스트잇 이용해서 부착 |
▶ 나중에 읽게 되더라도 잊지 않을 만큼만.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나중에 이름 잊어 먹을까봐 일기 페이지 모퉁이에 이름 적어 두었었다. 그리고 훗날 정리를 할때 이런 글도 넣어야지 하는 생각도 짤막하게 표시 해놓고.
그렇게 쓰다보니 시간도 참 절약되고 얼마 후에 읽어봐도 다 생각이 나는 것이였다.
하노이 기차역에서 |
싸파에서 만났던 사람들 |
베트남 나짱 일기중에서 |
▶ 게다가 나의 경우는 참 많은 사진들을 찍고 다녔었다.
항상 목에 카메라를 휴대폰처럼 걸고 다니면서 움직이는 대로 찍었었다.
내가 뭐 작품 사진가도 아니고 그렇게 마구 찍다보면 그중에 몇개 좋은 사진도 있을수 있겠지 하는 마음 이였는데 좋은 판단 이였던 것 같다.
이 블로그에 일기를 올리기 시작하며 그날 그날 찍었던 사진들을 컴퓨터로 불러오니 내가 뭘하고 다녔는지 잊을래야 잊을수가 없었다.
다 나와있으니, 아 맞어 내가 이때 이곳에 있었구나? 더더욱 세세한 일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물론 신변잡기 적인 일들이 너무도 많았지만 정말 다시 여행을 떠난 듯 하였다.
▶ 자 이제 완성된 모습.
2006/12/28 |
2006/12/14 |
▶ 이 일기장에는 이 밖에도 정말 많은 추억들이 담겨져 있다. 많은 이 메일과 연락처는 공개하기가 그렇고, 내게 남겨 주었던 메모들과 가이드북에 나오지 않은 현지에서 배운 언어들, 또 나만이 가질수 있었던 그런 추억어린 것들이 많이 담겨져 있다
베트남 떠나는 날 우리방 문틈에 남긴 민경이와 선희의 메모 |
캄보디아에서 Avy와 kon이 가르쳐 주었던 언어. |
치앙마이 고산족 트랙킹 가이드 Nui의 기념품 |
내가 정말 게으르고 덤벙대는 사람 이였었기에 나는 이 일기장이 소중하다.
책상 한켠에 두툼히 놓여져 있는 이 한권의 물건이 '나도 한다면 할수 있구나' 하는 성취감을 쥐어준다.
솔직히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시 여행을 어디론가 떠날때가 온다면 이렇게까지 일기를 쓸 자신은 또 없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없기에 홀가분 하지 않은가?
또다시 내 스스로 또 무언가를 적고있는 나 아닌 나를 발견한다면 재미있을것 같은데?
단지 누군가에게 보여주려 하는게 아닌 나만의 순수한 일지로...
유치하면 어때? 신변잡기면 어때? 모든게 내 자유이고 모두가 다 소중한 시간의 추억들인데.
이제 이 한권의 일기장이 아닌 책꽃이를 가득 채울 많은 여행일기장들이 있었으면 좋겠당~~
이번엔 정말 누가 모르고 버리지 않게 잘 보관할꺼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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