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간만에 우리밖에 없다. 너무도 좋다.
수많은 유적중에 아무도 없는 이런곳을 지날때 마다 기분이 상쾌해진다.
쁘리아 칸 Preah Khan : 규모에 더해 아름다움을 간직한 삐라아 칸. 쁘리아 칸이 벌이는 거목과의 사투는 따 쁘롬 못지않게 드라마틱하다.
기대보다 훨씬 좋은 느낌을 주는 곳을 발견하게 되면 기쁨지수는 배가된다.
쁘리아 칸은 그런 곳이었다.
불교와 힌두교가 되범벅되어 퓨전의 냄새가 나긴 했지만 그만큼 다채롭고 흥미로왔다.
내가 들고 있는 책을 보고 어느 한국인이 인사를 건넨다.
혼자 다니는 듯하였는데 그쪽도 앙코르 책을 들고 열심히 탐구하는 듯했다.
잠깐 여러 얘기를 나누며 고고학적인(?) 대화를 나눈다.
이곳은 그래도 한적한 편인지 관리직원인 듯한 분이 해설을 해주려고 하셨다.
아름다운 압사라의 모습이 유독 빛이 났다.
니악 뽀안 Neak Pean : 니악 뽀안의 첫인상은 연꽃이다. 지금은 사라진 쟈야타타카(북쪽저수지)의 한가운데 활찍 핀 연꽃. 그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답다. 하지만 이악 뽀안은 '꽈리를 튼 뱀' 이라는 뜻으로 꽃과는 거리가 먼 이름을 지녔다.
물이 없는 저수지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어렵다.
방향마다의 이색적인 수로의 모습을 살피며, 책속의 사진들을 찾아가며 비슷하게 찍어보려는 시도를 해보았다.
이래저래 가는 곳마다 모두 특색있는 모습들에 신이 난다.
끄롤 꼬 Krol Ko : 앙코르의 모든 유적에는 의미가 있다. 황폐해져 엣 모습을 모두 잃어도, 규모가 작아도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 끄롤 꼬도 그런 곳이다. 규모가 작고 눈에 띄지 않아 많은이들이 찾이 않는 이곳에서 혼자만의 추억을 남겨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끄롤 꼬는 '황소 외양간' 이라는 뜻이다.
따 쏨 Ta Som : 앙코르 톰을 건립한 자야바르만 7세가 효자라는 것은 앙코르 사원들을 둘러보면서 이미 느꼈을 것이다. 자야바르만 7세는 쁘리아 칸으리는 거대한 사원을 지어 아버지에게 바쳤지만 그 전에 작지만 아버지의 제사를 지낼 목적으로 이곳 따 쏨을 건립해 헌정했다.
자그마한 곳이라도 하나 하나의 퍼즐 찾기 재미는 똑같다.
'인자한 사면상'이 이건가, 저건가? 먼저 다녀간 여행 선배의 뒤안길을 좆는 모습이 무슨 숙제하는 것 같다.
동 메본 East Mebon : 동 메본은 시바 신에게 헌정된 사원이지만 실제로는 라젠드라바르만 2세가 자신의 부모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곳이다. 당시 동 메본은 넓이 2km X 7km, 깊이 3m의 인공저수지 위에 섬의 형태로 있었다. 이 동 바라이의 젖줄로 백성들은 농사를 짓고 배불리 먹었으니 라젠드라바르만 2세가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과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인공저수지는 천 년의 세월에 묻혀 지금은 육지로 변해버렸다.
북부쪽을 모두 훑어보고 동바라이 쪽으로 간다.
소반이 '쁘레 룹' 이라 하는데 이상하다.
전에 와본 곳과 틀린 것 같은데? 책과도 내용이 틀린 것 같아 다시 확인하니 자기가 착각했다고 '소리'를 연발한다.ㅎㅎ
하긴... 이젠 나도 이게 그것 같고 저게 그것 같다.
배도 고파오니 이젠 퍼즐맞추기 게임도 지겨워지고, 힘들어지고 돌들이 좀 싫어지기 시작한다.
며칠째 돌덩어리들만 보니 그런가? 아무리 일주일권 끊고 자세히 볼거라 마음 먹었었지만 4일째 되니 슬슬 흥미가 적어지는 듯 하다.
아까 쁘리아 칸에서 만났던 한국인을 여기서도 만났다.
자기는 3일권으로 2일째인데 벌써 지겨워진다며 내일 뜰까 생각한다고 한다.
내가 비정상은 아닌거야...
몸도 힘든지라 대충 관람하고 내려와 앞의 식당에서 일단 옥수수와 코코넛으로 배를 채운다.
우아~ 디따 커서 마음에 드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얼마 안남았다. 좀더 힘내서 돌아다니자!
반띠아이 쌈레 Banteay Samre : 오랜 복구 공사 끝에 완성된 바띠아이 쌈레는 보석같은 신전이다. 건축양식 등 여러 면에서 앙코르 왓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빤띠아이 쌈레, 온종일 북적대는 앙코르 왓에 비해 한산해 상큼한 느낌마저 든다.
미니 앙코르 왓이라는 해설에 고개를 끄덕인다.
적당히 아담하게 아름다움을 축소한 듯 하다고 할까?
유난히 탱탱해 보이는 입구 사자상 앞에서 장난쳐보며, 햇살 드러워진 유적의 따사로움에 젖어본다.
거의 일몰이 다가와서일까?
뚝뚝을 타고 나니는 길 저편으로 한떼의 물소들이 유유자적하게 풀을 뜯으며 걷는 모습이 너무도 평안해 보인다.
열심히 운전하는데 세워달라기가 그래서 그냥 지나쳤는데 조금더 가니 쁘레룹이다.
오늘의 마지막 여정이니 걸어서 아까 물소가 있던 곳으로 가 보았다.
흠냐.. 아까의 그 느낌, 그 장면이 안나오네...
쁘레 룹 Pre Rup : 붉은 햇살 사이로 사라지는 쁘레 룹의 그림자는 잘 그린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사원 전체가 붉은 빛이 감도는 라테라이트로 이뤄진 쁘레 룹. 석양 무렵 이곳을 찾으면 천 년 세월을 한번에 안는 듯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쁘레 룹은 ' 죽은 육신의 그림자' 라는 뜻이다. 화장 의식이나 화장한 후의 재를 의미하는 이름 덕분인지 사원은 장례의식을 치루던 곳으로 추정된다.
예전에 한 번 와본 곳인데도 불구하고 생소해 보인다.
이젠 별 감흥도 없다.
맞어... 정말 너무 돌덩이리들만 보고 다녔어...
릴렉스가 필요해.
이젠 앙코르 유적, 아주 먼곳이나 따로 입장료를 내야하는 곳을 제외하곤 거진 다 돌아본듯하다.
4일동안 정말 많이도 다녔다.
앙코르 왓 2,3층을 가봐야 하는데 내일 여유로히 봐야겠다.
괜시리 어려운 시험을 다 치루고 난 후의 느낌처럼, 달리는 뚝뚝에서 바라보는 유적지의 길들과 쓰라 쓰랭 호숫가에 드리워진 햇살 빛깔들이 담배와 어울러 감상에 젖게 만든다.
오늘은 소반이 집안 약속이 있다며 일찍 시내로 오기를 바랬다.
이젠 앙코르 유적 관광도 거의 다 끝나가니 Avy와 Kon이 너무도 보고 싶다.
한번더 못만나고 이렇게 떠나가야 하는 건가?
혹시 몰라 숙소에 도착해 소반에게 전화를 걸어봐 달라고 부탁한다.
왜 자기 핸드폰으로 전화를 안하는 거얌?
밧데리가 떨어졌다는데 믿음이 안가...
근처 휴대폰 빌려주는 데서 전화를 건다.
어?? 프놈펜에서 왔다고 하네?
왜 전화를 안했을까??
저녁때 보기로 하고 어떻게 할까...
아침에 예약한 '꿀렌2' 자리를 더 예약하려 바로 롱라이브로 간다.
그런데 소반이 장난치나? 내가 캄보디아말 못알아 듣는다고 카운터에 커미션을 요구 하는 것 같다.
뭐야... 그거 얼마 한다고...
얘기가 길어지자 짜증이 난다.
내가 사면 되는데 왜 자기가 나서서 일을 꼬이게 만드는 건지...
이래저래 시간은 가고 다 귀찮아 진다.
그냥 우리끼리 간다고, 너는 있다가 그녀들 집으로 가서 8시에 우리 숙소 앞으로 데려와 달라고 얘기한다.
너 오늘 약속 있는 건 맞는거냠?
내가 화를 내자 미안했는지 이래저래 설명을 하려하는데 만사 다 귀찮다.
나혼자 알아서 숙소로 가겠다고 소반을 보낸다.
근처 인터넷 가게에 들러 여행 떠난 뒤 처음으로 한국에 전화를 한다.
어머니와 큰애, 작은애와 통화를 한다.
요즘 근황과 여러 얘기들을 물어본다.
어렵사리 그녀의 소식을 물어본다.
기대와는 달리 그동안 한번도 연락이 없었다는...
편지까지 써서 연말에 애들과 함께 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을 했었는데... 서운하다.
이런건가... 그래... 이젠 마음을 다 잡을 때가 다가오고 있어...
태안이에게 어떻게 된건가 설명하고 꿀렌2로 향한다.
야호!! 간만에 배터져라 먹는다.
태안이도 입맛 걱정 없는 이곳에서 원기회복하는 것 같다.
음료수는 사먹는 거구나.
목이 메이니 많이 마시고 싶어진다.
예전부터 기대 했었던 압사라 쇼인데 마음이 다른데 가 있어서 그런가? 몰입도가 너무 떨어진다.
게다가 자리가 멀어서 잘 보이지도 않고, 어서 먹고 그녀들이 올 숙소로 가고 싶다.
8시 30분...
왜 오지 않나 소반에게 전화해보니 이제야 픽업했다고 한다.
방에 잠깐 들어갔다가 오니 도착했다.
헉, 주위 사람 민망스러울 정도로 요란스레 포옹을 한다.
그녀들도 우리만큼 보고 싶었을까? 너무도 반갑고 즐겁다.
'레드피아노' 2층
'레드 피아노'로 간다.
자연스레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거닐자니 약간 주위의 눈총이 따가운 것도 같다.
여기저기 테이블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눈치가 보이는 것 같아 태안이와 한국말 쓰지 말자고 한다.
마치 일본인인척 하며 영어만 어렵게 쓴다. --;
그녀들은 저녁을 안먹고 왔나보다.
캄보디아인과 태국인들은 입맛이 비슷한가? '똠양 스프' 를 주문한다.
우린 너무 배가 불러서 생맥주만.
이런 저런 바디랭귀지를 하자니 모습이 좀 웃기긴 하지만 내내 웃음꽃이 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주위의 웨이트리스들이 모두들 우리자리로 몰려와 통역을 해준다.
궁금했던 서로의 마음을 전달한다.
그동안 너무도 보고 싶어했다고 말하자, 그녀들도 마찬가지고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래저래 웨이트리스들이 Avy와 나, 태안이와 Kon 사이를 엮어주면서, 자기들도 즐거운 듯 축하해 주며서 부럽다며 시샘하는 표정을 짓는다.
약간의 취기까지 더해져 이야기들은 점점 더 흥겨워진다.
우리 넷이 같이 시하눅빌로 놀러가자고 제안하니 다들 좋다며 동의한다.
일정을 서로 맞추며 기대에 벅찬다.
한 웨이트리스가 물어본다.
"언제 캄보디아 떠나니?"
"글쎄?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럼 그 후엔 어떻게 할꺼니?"
"....."
잠시 고민하다가 어렵게 대답을 한다.
"모르겠어... 그렇지만 지금 이순간 그녀가 좋고. 그녀와 같이 있고 싶어. 그 이후의 일들은 그때 생각할래..."오늘밤 더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었는데, 프놈펜에서 오늘 도착해서 그런지 피곤하다고 한다.
내일 아침에 우리 숙소로 온다고 한다.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한다.
숙소의 바에서...
웬지 모르게 아직도 들뜬 마음으로 숙소에 있는 바에서 태안이와 한잔을 더 기울인다.
몇개국어를 원할히 소통하는 똑똑한 바텐더겸 매니저와 두런 얘기를 나눈다.
취기는 오는데, 밤새 잠을 못 이루며 뒤척인다.
괜히 일을 저지른것은 아닌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만남을 순간의 흥겨움으로 생각없이 가지는 것은 아닌가...
조금은 걱정 스럽게 조금은 심각하게 태안이와 앞으로의 여정을 고민한다.
태안이가 어른스럽게 한마디를 건넨다.
" 형, 우리는 떠날 사람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