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여행을 떠나면 안되었다.
그 당시 모든 내 상황은 힘들었으며 내겐 책임 져야 할 가족도 있었다.
재정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누가 외국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나에겐 해외여행이란 것도 처음이었다.
미칠 것만 같았다.
여러 가지 일로 인한 우울하고 자학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 주위는 황량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집 앞에 있는 도서관을 찾아 책을 빌려보게 되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한 책이 눈에 뜨인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인도를 가라" 음??
빌렸다. 내용에 크게 공감하는 책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하나의 돌파구 내지는 나를 바꾸어 보는데 여행이란 것이 한 수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 마침 한 친구가 베트남 하노이에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며 그렇게 되면 와서 좀 쉬다 가란 얘기를 해줬기에 (끝내 이 친구는 지금 현재 까지도 서울에 있다) 그래? 잘됐네? 베트남 관련 책들도 같이 빌려본다. 처음엔 잘 몰라서 여러 가지 베트남 이름 들어간 책들 아무 생각 없이 빌려보았었는데 며칠이 지나 그 중에 한 책이 내 마음을 아주 흔들어 놓았다.
난 여행이란 것에 대해 그때까지 아무것도 몰랐기에 관심 가지다 보니 론리플래닛 얘기가 많이 나와서 도대체 뭔데 사람들이 많이 찾지? 하며 집었는데 몇 장을 뒤척이다 보니 너무 흥분이 되기 시작한다.
이 책 하나면 나도 혼자서 배낭 여행이란 것을 가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에 잠을 설렜다.
배낭여행이라….
내 학창시절엔 해외로 배낭여행을 가는 사람은 없었다.
해외여행 자율화는 지금 기록을 찾아보면 1989년 시행 됐지만 실제 대학생의 해외배낭 여행이나 어학연수는 90년대 초 중반부터 자율화가 되었다. 그 전 까지는 정말 합법적으로는 해외여행이란 것을 거의 못하는 폐쇄된 나라였었다. 누군가 주위어른이 해외 다녀왔다고 하면 와~ 하며 부러워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자그마한 기념품, 하다 못해 비행기 에서 나눠주는 트럼프카드만 보여줘도 신기해 하였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 대학을 남들보다 일찍 졸업한 나는, 어느 날 군 제대 후 복학을 앞둔 친구들이 배낭여행을 간다고 떠들썩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부러웠다. 생각해 보면 그 당시 1994년 겨울, 많은 사람들이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루트로 배낭여행을 다녔었던 것 같다(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국경이 열리기 전이라). 나도 가고 싶었지만 어린 나이에 일찍 결혼을 하게 되어서 결혼식 준비도 하고 일도 하느라 "너희들 갔다 와~ 난 신혼여행으로 사이판 갔다 오면 되지 뭐" 하였다. (끝내는 사정상 제주도로 가게 되었다 ㅠ,ㅠ)
그로부터 한달 여가 지나고 나 일하는 곳으로 친구들이 찾아왔다. 그때부터 1년이 넘도록 이 녀석들은 만나면 매일매일 그 한 달간 배낭여행 다녀온 이야기로 수다를 떤다. 카오산(발음도 제대로다 카우싼?)이 어떻고 빳뽕에서 '파이널카운트다운' 음악이 흘러나오며 어쨌다는 둥, 아~그 TV에서 보던 말레이시아 메르데카 경기장 잔디에서 뛰어봤다는 둥, 돌아오는 길에 홍콩에서 김치찌개 먹는데 눈물이 줄줄 나왔다는 둥, 어떻게 몇 년이 넘게 그 놈의 화제거리는 식을 줄을 모른다. 아무런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아주 곤욕스러웠었다. 그 때, '이 놈들 두고 보자 언젠가 나도 꼭 배낭여행을 가고 말 테다!!'마음 먹었었다.
그러나… 그렇게 여행을 간다는 게 쉬운가?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일하느라, 결혼하고.,, 애도 낳고,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점차 30 중반이 되어가면서 나에게 배낭 여행이란 것은 엄두도 못 낼 꿈 같은 얘기가 되어 버렸었다.
가끔 해외여행에 관해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면 난 늘 뒷전 이였다. 하다못해 모두들 신혼여행이라도 외국을 다녀왔지만 난…. 제주도다.
그러던 그 배낭여행이 현실로 이루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 책을 보고 꿈틀거렸다.
그 때부터 각종 책들과 인터넷 검색으로 매일매일 밤을 지새운다.
아… 여행을 꿈꾸고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구나 하는 것을 몸소 느꼈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나 혼자였기 때문에 정말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시행착오를 줄이고 싶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여행에 관련된 많은 책들을 빌려 읽기 시작 했으며 인터넷을 뒤지며 나보다 여행선배 격인 많은 사람들의 여행일기를 뒤쳐보며 메모하고 나도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꼈다.
알다시피 여러 여행 정보를 읽다 보면 모두 다 가보고 싶다. 원래 베트남일주만 생각했었지만 점차 점차 조금만 더, 이왕이면, 욕심에 마구마구 늘어가다가 (인도에 중국, 일본, 홍콩, 마카오, 네팔, 미얀마.….) 가까스로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4나라로 압축시키며 만약에 시간과 경비 등 여건이 되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까지, 항공권을 알아보면서 대만까지, 잠깐 미얀마까지 꾸미기 시작한다. 기간도 처음 보름에서 무한정 늘어갔다가 가까스로 3개월 이하로 간다.
일정과 루트를 계획하며 나날이 흥겨웠고 모든 시름에서 잠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음… 이러다가 이번에도 못 떠나면 정말 영영 배낭 여행이란 기회가 다시는 내게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더 나이 먹기 전에 가야 했다. 그 첫 시작은 어느 책에서도 나와 있듯이 항공권구매가 최우선 이였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거다!!
사진, 여권, 준비 하고 항공권 검색 모드, 시간이 꽤 남았지만 여행 경비 문제나 직장 그만두는 날 일정 등등 계획보다 미뤄지고 당겨지고 하면서 2006.12.06 일자 3개월 오픈 대만 경유 방콕 왕복권을 일치감 치 끊었다. 항공권 구매 이벤트로 방콕 숙소까지 미리 예약해 놓는다. 귀국일정도 따져보니 설 연휴인 2007.02.17~2007.02.19 이전에 들어오려 일단 2007.02.14 일로 해놓는다, 언제든지 리턴 변경 가능하니 여유가 있을 것 같았다.
준비물 준비 하는데도 돈이 꽤 들었다. 최대한 지출을 줄이려고 했지만 처음이라 다 사야 하니…일단 집에 쓸만한 것들 다 모아놓고 하나씩 생각하며 짐 될만한 것들은 다 줄이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역시 경험이 없어서 그랬는지 여행 내내 쓸데 없는 것들도 꽤 많았다.
여행 떠나기 한달 전, 이젠 책 보는 게 지겹다. 내가 시험 보러 가는 것도 아니고 웬만한 정보는 대충 알고 있으니 이젠 가서 잠깐씩 방문 전 읽어봐도 좋을 듯싶다. 너무 짜인 계획도 장기간 여행에선 재미가 없음을 간접적으로 알기에 대강의 윤곽만 잡아 놓는다. 그래 이게 배낭여행이지.
2006.11.30 직장을 그만 둔다.
그만 두자마자 다음날 떠나려 했었는데 생각보다 5일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미리 여행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돈 별로 안들이고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부터 슬슬 가보기로 했다.
그 동안 정작 서울에 살면서도 어디에 무엇이 있고 갈만한 곳이 있는지 신경 안 쓰고 살았었다. 애들 때문에 토요 휴업일 잠깐 어디 데리고 다녀오는 것도 귀찮아 하고 휴가철 어디 놀러 가는 것도 제대로 준비도 안하고 공부는 무슨 공부? 당일 날 오후 늦게나 훌러덩 의미 없이 시간만 때우고 짜증내며 다녀오곤 했었다.
그래서인가? 그 때의 기억들이나 추억들이 희미하다. 만약 내가 이번 여행가는 것처럼 미리 준비하고 공부하고 구경이나 여행을 갔었다면 더욱더 재미있고, 느낌이 있는 기억들을 많이 남겼을 것 같았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처럼 인터넷에 방문기나 여행기 같은 것을 기록해 놓으면 지난날 추억을 되살리며 이런 시절도 있었지 하며 즐거워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예상은 맞았다.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갔었던 그 곳들은 나에게 아쉬움만을 더욱 남겨주고 나중에 공부하고 다시 와보고 싶다 라는 후회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 후회는 외국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어떻게 공부하고 올까? 어디 어디를 다닐까? 어떤 루트로 다닐까? 라는 궁금증과 내가 사는 서울, 한국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놈이 뭔 외국 나들이냐? 하는 부끄러움을 주었다.
많은 여행 선배들은 얘기한다.
" 아는 만큼 보인다. "
그래서 틈내어 예전에 태국관광청에 두차례, 대만관광청 갔었던 것처럼 한국관광공사에 가서 자료를 얻었고 이번 여행 중에는 외국에서 론리플래닛 코리아 편을 구입하게 된다. (요즘 읽는데 재미있다 ㅎㅎ). 훗날 이번 여행을 마치고 나서는 꼭 우리나라도 다시 느껴봐야지 하는 다짐을 가지게 되었다.
조금씩 출국 날짜가 임박해가며 흥분모드에서 걱정 모드로 변하기 시작 한다.
주위 친구들에게 예고했더니 부러워하는 한편 걱정도 하고 잘 생각 했다고도 하고. 미친놈이라고도 하고. 모르겠다. 일단 저질렀으니.
부모님과 가족에게는 여행 좀 다녀오겠다는 말만 간단히 했다. 자세히 얘기 하기도 어려웠고 그냥 그렇게 떠나고 싶었다. 다행이 캐 물어보지는 않으셨다.
잊고 싶고, 지워야 할 누군가 에게는 그 동안 틈틈이 써놓았던 편지를 모두 모아 떠나기 전날 등기로 보냈다.
나에게 이번 여행은 나를 변화시키고 싶은 욕구와 무언가 내 마음속 응어리 졌던 부분을 풀고 잊기 위함과 내 자신에 대한 자성의 시간, 미래 구상, 또한 즐겨도 보고 싶고,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 보고 싶다 등등 너무나 많은 숙제를 짊어지는 여행 이였다.
너무 우울한 모드의 여행 시작인가? 많은 사람들처럼 즐거운 마음의 시작을 하지 못했던 나로서 과연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내가 돌아오기는 하는 걸까? 내가 잘하는 짓일까? 떠나는 순간까지 자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떠났고 돌아왔다.
이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84일간의 여행을 내 인생에서의 전환점이라 여기고 그 순간의 느낌들을 조금씩 하나씩 남기고자 한다. 어떤 이들은 이게 뭐야? 시시해 할 수도, 어떤 사람은 그래 맞아 공감도 할 수 있겠고, 또 어떤 사람들은 내 글에 태클도 걸 수 있겠지. 신경 안 쓸란다. 왜? 나 쓰고 싶은 대로 쓸 거니까.
훗날 어떤 의미로 내게 남겨질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뒤집어 보면서 흐믓하고 즐거운 미소로 읽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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